[양낙규의 Defence Club]해병대의 '날개'…마린온 탑승기

최종수정 2023.10.10 07:40 기사입력 2023.10.10 07:13

48년만에 부활한 해병대 항공단 르포
1973년 항공기 23대 도입 이후 해체됐지만
공지기동 해병 위해 마린온 도입해 부활

지난 달 찾은 경북 포항시 오천읍에 위치한 해병 1사단 항공단. 늦가을 장맛비가 하늘을 뚫을 듯 쏟아진 뒤 돌연 강렬한 햇살이 내리쬤다. “날씨가 하루에도 다섯 번이 바뀌어 오천읍”이라던 동네 주민의 말을 실감했다. 항공단에서는 가장 먼저 활주로가 반겨줬다. 해군 항공부대와 주한미군 항공부대, 포항경주 민영공항까지 함께 사용하는 이 활주로에서는 각종 항공기의 이착륙이 이어졌다. 항공단 안쪽에선 회색빛의 마린온이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지난해 6월 해병대에서 전력화가 완료된 마린온은 한국형 기동헬기(KUH-1) ‘수리온’(SURION)를 변형해 제작됐다. 마린온은 해병대를 의미하는 ‘마린’(MARINE)과 수리온을 합성한 이름이다.


48년만에 부활한 해병대 항공단

해병대는 1958년 3월1일 제1상륙사단 항공관측대를 창설했다. 헬기를 활용해 해병대원들을 적진에 투입해 상륙작전을 펼치는 역할을 맡았다. 이 부대는 1973년까지 항공기 23대를 도입하고, 항공 인력 125명을 양성했다. 비행시간만 약 450여회 1537시간에 달했다. 전군 최초 해외 파병도 떠났다. 베트남전이다.


하지만 1973년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면서 해군으로 통합됐다. 그 후 48년만인 지난해 12월 해병대 항공단은 부활했다. 국산 상륙기동헬기 ‘마린온’(MARINEON)이 배치되면서 바다뿐만 아니라 공중에서도 지상으로 신속히 침투해 적의 목표물을 제압하는 ‘공지(空地) 기동 해병’을 향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비행 임무 마친 마린온, 대규모 거품 샤워

공지 기동 해병을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정비창이다. 정비사들은 비행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마린온의 상태를 점검 중이었다. 정비사들은 매일 비행을 앞둔 기체를 점검한다. 항목만 200여개. 특히 남아 있는 연료를 적당량 빼 물이 섞여 있는지 확인하는 점검은 필수적이다. 비행 중에 엔진에 이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연근 정비대대장은 “타군의 헬기와 달리 마린온에 신경 써야 할 것이 더 있다”면서 기자를 세척장으로 이끌었다. 헬기가 샤워를 하는 곳이다. 세척장 크기만 건물 5층 높이였다. 미니 지게차가 24t에 육박하는 마린온을 끌고 세척장으로 이동했다. 마린온은 해상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비행 후에 기체는 물론 엔진까지 염분이 묻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약품을 사용한 세척은 필수였다. 장병들은 마린온의 외관에 뚫려 있는 구멍은 모두 막고 마치 아이 목욕을 시키듯 세척을 했다. 이후 세척장 천장과 바닥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며 약품을 씻어냈다.


가상 비행을 위해 시뮬레이터에 착석했다. 김유영 교관은 “긴장을 풀라”면서 조정 간(스틱)을 설명해줬다. 왼팔은 '콜렉티브 조종간(상하 조정)'을, 오른팔은 '사이클릭 조종간(방향 조정)'을 잡았다. 여기에 기체를 좌우 방향으로 회전하는 페달까지 동시에 움직여야 했다. 머릿속이 얽히고, 또 설켰다. 계기판도 복잡했다. 10인치 컬러 다기능 디스플레이(MFD)인데 6개의 버튼을 누를 때 마다 열상, 전자지도 등으로 화면이 전환됐지만 헷갈리기 일쑤였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마린온을 이륙시켰다. 최종목적지는 영일만에서 유명한 호미곶(호랑이 꼬리 마을). 기체는 고정됐지만, 눈 앞에 화면이 움직였다. 실제 비행을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한참을 비행한 후 고도를 낮추자 호미곶의 상징물인 ‘상생의 손’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현기증 나는 마린온 가상 비행…실제 탑승해보니

활주로에 나와 엔진에 시동을 걸고 있는 마린온에 탑승했다. 마린온은 꼬리 날개에 ‘23025’이란 숫자가 선명했다. 2023년에 제작된 25번째 기체란 의미다. 내부는 완전 무장한 해병대장병 9명이 탑승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마린온은 활주로 끝으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다 관제탑과 통신을 한 후 점프하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1000ft(300m) 상공에 올라가자 저 멀리 해군의 P-3 해상초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고도를 더 높이자 포항시가 한눈에 들어왔고 아파트는 손톱만한 크기로 작아졌다. 기류로 인한 흔들림 외에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이날 비행은 호미곶에 이어 신창 간이해변, 포항IC를 거쳐 환호공원까지 날았다. 비행거리만 51㎞, 비행시간만 1시간 소요됐다.


항공단 소속 마린온 2대는 이날 호주 북동부 일대에서 진행되는 다국적 연합훈련 ‘탈리스만 세이버’에 참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마린온이 해외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린온의 이번 장거리 원정 훈련은 외국에서 우리 상륙기동헬기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인 만큼 해병대 항공단도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공지 기동 해병대의 첫 단추는 이미 끼워졌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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