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의 Defence Club photo]한미동맹 65주년·SCM 50주년의 역사

최종수정 2019.07.22 18:48 기사입력 2018.10.30 07:41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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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탄생했다. 올해로 65주년이다.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 체결에 반대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로 체결된 방위조약은 미국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방위조약에 이어 한미 양국은 1954년 군사 및 경제원조에 관한 합의의사록을 교환했다. 방위조약의 후속조치 성격인 이 의사록을 통해 미군은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게 됐다. 또 우리 정부는 미측으로부터 7억달러 규모의 군사ㆍ경제 원조를 받았다. 정전협정과 방위조약, 군사경제원조 합의의사록 등을 3개의 축으로 출범한 한미동맹은 한반도 전쟁 재발 억지에 역할을 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작전통제권으로 상징되는 군사 주권 제약 문제와 수직적인 한미 관계에 대한 비판 등이 국제질서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한미동맹도 변화하게 된다.


1970년대 닉슨독트린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 도덕주의를 표방한 카터 행정부와 유신 체제간 대립 등의 갈등기를 겪으면서 흔들렸다. 당시 한미간에 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안보협의회(SCM)이다. 한미는 SCM을 50년동안 이어오면서 많은 역할해왔다. 우선, 지금의 한미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7년 제10차 SCM에서 한미는 연합군사령부(이하 연합사) 창설을 결정했고 실제 이듬해 연합사가 창설됐다.1978년에는 연합사 창설과 함께 한미 합참의장 간 협의기구인 한미 군사위원회(MCM)도 설치됐다. 이로써 양국 통수권자의 지침을 SCM→ MCM→ 연합사 등을 통해 구현하는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됐다.


SCM은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능력 구축에도 기여해왔다. 1970년대 미국 정부의군수공장 건립 지원과 대외군사판매(FMS) 차관 제공 등은 한국군이 자주국방 역량을강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우리 군은 미국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하고 방위산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군 장비를 현대화하고 방위산업을 발전시켰다.


SCM은 작전통제권 환수(전환)에서도 주요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1994년 평시작전권의 환수가 이뤄졌다. 이후 2006년 제38차 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은"2009년 10월 15일~2012년 3월 15일에 전시작전권도 한국군으로 전환한다"고 합의했다. 이후 전작권 환수시기는 2012년 4월 7일로 정해졌으나 2010년에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해 전작권 환수 시기가 2015년 말로 연기됐고, 2014년 제46차 SCM에서 한미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원칙에 합의하면서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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