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이야기]"적의 상륙을 막아라" 경북 영덕 화진훈련장 24시

최종수정 2024.01.01 08:01 기사입력 2024.01.01 08:01

육군 50보병사단 상륙작전 방어 훈련
해상 위 적 침투정 겨냥해 포탄 사격

6·25전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다.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지기 하루 전. 이명흠 대위는 772명의 학도병을 이끌고 장사리로 향했다. 학도병들은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다. 당시 학도병의 평균 나이는 17세. 군사 훈련을 받은 기간은 2주에 불과했다. 학도병들은 작전 내용도 몰랐다. 어린 나이에 악천후 속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받아내야 했다. 작전이 끝나고 장사리에 남겨진 소년들은 포로가 돼 북으로 끌려갔다. 북한군은 포로들이 걷다 지쳐 쓰러지면 대창으로 찔러 죽이기도 했다. 단 한명의 유해도 수습하지 못한 학도병들의 사연은 1997년 장사리 해변에서 상륙작전에 사용됐던 문산호와 유해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19년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화진훈련장에 배치된 K105A1 차륜형 자주곡사포 6문(풍익).
모래사장에서 적의 상륙작전을 방어하기 위해 훈련중인 육군 2작전사령부 예하 50보병사단과 950포병대대 병력들.
지휘통제실의 전술통제기는 레이더에서 받은 적의 속도 등을 계산해 사격할 좌표를 계산해 낸다.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한 작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은 학도병이 아닌 최신예 무기와 장병들이 작전에 투입된다. 지난해 11월 23일 장사리에서 4km 떨어진 화진해수욕장 내 화진훈련장을 찾았다. 화진훈련장은 1982년부터 50사단이 사격훈련장으로 쓰고 있다. 한강 이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지·해·공 합동훈련이 가능한 곳이다. 이곳은 한때 주민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훈련장은 해수욕장 전체 해안선 1600m 가운데 42%인 680m를 차지한다. 주민들은 해수욕장의 관광지 활용과 조업 활동을 위해 훈련장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2021년 4월 50사단과 지역주민, 관공서가 논의를 시작하면서 갈등이 매듭 지어졌다.


차륜형 자주곡사포 ‘풍익’ … 적 움직임 자동계산해 명중

바닷가 위로는 따뜻한 햇살이 비췄다. 모래사장엔 육군 제2작전사령부 예하 50보병사단과 950포병대대 병력이 자리를 잡았다. K105A1 차륜형 자주곡사포 6문(풍익)도 전방을 향해 일렬로 늘어섰다. 이날 훈련은 적의 상륙작전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격 30분 전부터 해안가에는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렸다. 해상에서 어업 중인 어민을 대피시키기 위해서다. 해경도 나섰다. 10여척의 어선이 포항항 쪽으로 방향을 틀어 빠져나갔다.


지휘관은 인근 장사해수욕장에 위치한 레이더에서 표적 정보를 전송받았다. 지휘통제실의 전술통제기는 레이더에서 받은 적의 속도 등을 계산해 사격할 좌표를 계산해 냈다. 순식간이었다. 이 정보는 풍익에 그대로 전달됐다. 풍익 6문은 일제히 7km 거리의 해상표적을 겨냥해 고폭탄을 쏟아부었다. 하늘이 쩌렁쩌렁 울렸다. 30m 옆에 서 있었지만, 몸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풍익이 쏜 고폭탄은 20여초 후에 표적의 상공에서 터졌다. 지휘통제실에서 관측장비로 본 표적 상공은 고폭탄이 터지고 난 뒤 발생한 연기로 가득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적의 반잠수정 등을 정확히 맞추기는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지연신관을 이용했다. 지연신관은 표적을 맞히기 전 파편을 상공에 터트리면 역할을 한다. 피해면적이 더 넓어진다.


백일영 950 포병 대대장은 “2017년 이후 6년 만에 올해 첫 사격을 했다. 북한이 상륙작전을 시도할 경우를 대비해 반복적으로 방어 훈련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병들이 어둠이 짙게 깔리자 침투하는 적의 동선을 밝히기 위해 조명탄을 발사하고 있다.

어둠 속 장병들 조명탄 120발 발사… 수평선 물결까지 생생

늦은 오후가 되자 81mm, 60mm 박격포 30문이 동원됐다. 어김없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고 방송이 이어졌다. 해안가에 노을이 저물자 장병들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해안가에 배치된 박격포는 장관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침투하는 적의 동선을 밝히기 위한 조명탄 발사가 시작됐다. 이날 발사된 조명탄만 120여발. ‘꽝, 꽝, 꽝’ 연이어 발사된 조명탄은 하늘에서 서서히 내려오며 해안가를 환하게 비췄다. 수평선 물결까지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이날은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한 날이다. 사격 현장을 지휘한 정유수 50사단장은 “사격은 정확하고 빠르게 이뤄졌다”며 “이번 훈련을 계기로 작전 수행은 물론 부대 개편 이후 완전작전과 완전운용능력(FOC)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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