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스칼럼]현 정부도 KAI 사장 인사 실패

최종수정 2024.02.05 08:57 기사입력 2024.02.05 04:00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산업계는 술렁인다. 방산업계의 맏형 격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사장 임명 때문이다. 정부는 KAI 사장 임명을 좌지우지해왔다. KAI는 김대중 정부가 적자에 시달리던 항공사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을 최대 주주로 두고 탄생했다. ‘주인 없는 회사’다.


KAI 사장은 정권마다 보은성 인사가 차지했다. 기업 운영 방식도 공무원 조직을 운영하는 식이었다. 정부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고, 무분별하게 지인을 채용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조직 문화도 훼손됐다.



KAI 초대 사장은 임인택 전 사장이다. 임 전 사장은 제35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2대 사장은 길형보 전 육군참모총장이다. 길 전 사장은 육군참모총장 퇴임 10일 만에 사장으로 임명됐다.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 3대 사장은 정해주 전 통상산업부 장관이, 4대 사장은 김홍경 전 산업자원부 차관보였다. 경영 차질은 심각했다. P-3CK 초계기 지체상금, 수리온 헬기 납기 지체, 군단급 UAV 사업 적자 수주 등으로 영업이익은 곤두박질쳤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던 김홍경 사장을 하성용 사장으로 교체했다. 하 전 사장은 KAI 출신이지만 사실상 외부인사로 평가받는다. 하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새 정부 첫 방산 비리 수사 대상자로 지목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KAI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방산 비리 수사를 지휘했다.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검찰은 하성용 전 대표에 대해 분식회계와 횡령 등 11가지 혐의를 적용해 구속한 뒤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대부분 혐의가 무죄가 난 가운데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KAI는 불편한 기업이 됐다.


낙하산 인사에 적자 경영·방산 비리 기업으로 지목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선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인 김조원 사장이 자리를 꿰찼다. 이후 김조원 사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다주택 문제가 불거지면서 불명예 사퇴를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공군 조종사 출신인 강구영 사장을 임명했다. ‘돌고 돌아 보은 인사’였다. 업계는 술렁였다. KAI의 앞날이 깜깜하다는 평가였다. 강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예고했다는 듯 대폭적인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3개월 사이 20여명의 임원이 집으로 돌아갔다. 빈 공백은 군 출신과 자신이 몸담았던 단체의 인물들로 채웠다. 부작용은 곧 나타났다. 진주고용노동지청은 최근 공군 예비역 장성 출신 간부의 갑질 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나섰다. 이라크 출장 중 한 식당에서 직원이 술잔에 물을 채웠다는 이유로 술잔을 던졌다, 퇴근 후 사적 심부름까지 시켰다는 등의 의혹이다. 한 직원은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고, 또 다른 직원은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 사장은 세계 방산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마다 뒷말을 낳았다. 전투기 조종복을 입고 참가해 해외업체들이 당황했다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와 생산하는 전투기를 홍보하기보다 자신이 전투기 조종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보여주기식에만 급급하다는 평가다. 매출도 마찬가지다. KAI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3조8193억원, 영업이익 2475억원, 당기순이익 2218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업계는 “오래전부터 진행했던 카이의 사업 실적이 마치 강 사장의 실적처럼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사장 취임 후 임원 대폭 인사 등 후유증 시달려

보안실태는 더 심각하다. 2022년에 이어 지난해는 방위산업기술보호 통합실태조사에서 턱없는 점수를 받았다. 100점 만점에 76점을 받았다. 한화 등에 비해 10점 이상 차이가 난다. 카이는 군부대와 방산기업에서 사용하는 모바일통제 프로그램 통제(MDM)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 보안규정 절차를 받지 않은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모바일 코픽스다. 카이가 6억 7000만원을 주고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해외 출장자들이 휴대폰으로 업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내부정보가 외부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 보안실태조사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사용은 금지됐다. 결과적으로 회삿돈만 날렸다.


사고도 터졌다. 최근 인도네시아 직원이 이동형 저장장치(USB)를 유출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KAI는 자신들이 적발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료관리 부실이라는 지적을 모면하는 데 급급하다. USB에는 미국 정부의 수출승인(E/L) 관련 문건 등 49종이 발견됐다. 미 국무부 산하 국방교육 통제국에 지난달 30일 자진신고 했지만, 미국 측의 반발이 예상된다.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한다면 인도네시아와의 항공기 공동 개발까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으로 ‘항공우주청’ 설립을 약속했다. 우주정책과 우주기술개발의 핵심 기관이다. 하지만 항공우주산업을 이끄는 KAI 사장을 보면서 향후 항공우주청장에 누가 올지를 놓고 업계는 벌써 불안해한다. 지금껏 진행된 것을 보면 걱정 속에 설왕설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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