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무기 혈관같은 EMI차폐 케이블

최종수정 2011.07.05 17:20 기사입력 2011.07.05 11:50

EMI차폐 케이블은 미국 타이코(Tyco)사와 독일의 헬레만(Hellermann)사에서 수입해왔다. 하지만 연합정밀이 부품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26년간 총 500여억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1960년 12월 겨울. 갓 제대한 20대 청년이 사업의 꿈을 안고 서울 청계천거리를 나섰다. 이 청년은 이곳에서 미 군부대의 잉여 방산부품을 국내에 납품하면 수익이 남는다는 말을 듣는다.

김인술 연합정밀 회장의 첫 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8군에서 받은 잉여 방산부품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일명 '삼바리 자동차'에 사용됐다. 하지만 김 회장의 꿈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미국산 부품 못지않은 제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 생각 하나로 30년간 이끌어온 회사가 연합정밀(주)이다. 부품국산화를 위해 뛰고 있는 연합정밀을 최근 찾아갔다.
 
연합정밀 본사의 건물은 12개동으로 구성됐다. 그 중 8개의 건물은 서로 최상층이 터널로 연결됐다. 구름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처음부터 12개동을 설립한 것이 아니라 매출이 발생할때마다 연구소를 늘렸기 때문이다. 연합정밀은 전차에 탑재되는 인터컴(intercom) 통신장비, 전자파(EMI) 차폐 케이블, 커넥터 등을 생산한다.

육군의 핵심전력인 K-55자주포, K-21보병전투장갑차, K-2흑표에 장착되는 디지털 인터컴

 
3층 구조의 첫 생산공장에 들어가니 평범해 보이는 케이블들이 테이블위에 늘어서 있다. EMI차폐 케이블이다. 전봇대에 걸린 전선같이 보였지만 안에는 10~20종의 부품이 들어간다. 케이블은 그저 통신과 전기만 연결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직원은 "전투장비가 아무리 첨단장비라도 전자기파(EMP) 폭탄이 터진다면 꼼짝하지 못한다"며 "전자파 차폐케이블은 전자방해에도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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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EMI차폐 케이블은 모든 무기에 사용된다. 전차에만 140여종의 케이블이 사용된다. 장갑차는 85종, 자주포 130여종, 무전기 10여종, 무인항공기 99종이 사용된다. 마치 '최첨단 무기의 혈관'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EMI차폐 케이블을 국산화하기 전에는 미국 타이코(Tyco)사와 독일의 헬레만(Hellermann)사에서만 생산했다. 하지만 연합정밀이 부품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26년간 총 500여억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연합정밀은 총 412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중 생산직은 227명, 기술직은 56명, 연구직은 52명이다.

 
국방기술품질원 대전센터 유광식 연구원은 "경제적 효과만큼 중요한 것이 품질"이라면서 "EMI차폐 케이블의 불량을 막기 위해서 전자파 차폐여부 등 10여개 항목을 검사한다"고 말했다.
 
옆 생산공장으로 이동하니 가로, 세로 각각 20cm정도 되는 무전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육군의 핵심전력인 K-55자주포, K-21보병전투장갑차, K-2흑표에 장착되는 인터컴이다. 영화에서 보던 통신병의 통신장비와 달리 아담했다. 아날로그 방식인 상호통화기셋은 무전기 2대로 통제할 수 있는 장비다. 최근에는 디지털 방식인 상호통화기셋도 개발해 무전기를 8대까지 동시에 통제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방식은 데이터처리는 물론 전차내 소음도 차단해 송수신 가능하다.
 
김용수 사장은 "지하 등 통신이 끊기거나 통신거리가 짧으면 군사작전에 할 수 없다"면서 "통신장비 자체가 중계기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펠러등에 사용되는 케이블은 탄력은 물론 흔들림 등에도 버틸수 있어야 한다.


연합정밀 직원은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곳'이라며 옆 건물로 이끌었다. 여기는 케이블 테스트실이다. 테스트실 1층에는 높이 3m, 가로 5m, 세로 3m크기의 실험관이 있었다. 실험관 안에는 날개 없는 프로펠러 축이 힘차게 돌고 있었다. 국내기술로 개발된 한국형기동헬기에 납품되는 케이블이 끊어지는 등 손상이 발생되지 않는지 시험하기 위해서다. 연합정밀은 케이블의 시험평가를 위해 47개의 품질검사장비, 64개의 제품시험장비를 자체 개발했다. 국내는 시험평가를 할 수 있는 장비가 없기 때문이다.
 
연합정밀의 구름터널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었다. 핵심 방산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한걸음 나아가기 위한 발판역할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구름 터널이 하나씩 더 늘어날 때마다 연합정밀의 경쟁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에 맞춰,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경쟁력도 세계 유명 방산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구름 터널 위로 떠가는 구름이 더욱 높아 보였다.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에 들어가는 EMI차폐 케이블

양낙규 기자 if@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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