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의 심장 ‘잠수함’ 이렇게 만들어진다 [양낙규의 Defence Club]

최종수정 2023.06.13 09:30 기사입력 2023.06.13 07:20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현장르포
초대형 잠수함 장보고-III Batch-II 건조 한창
블레이드의 수 늘려 소음 줄여

기원전 320년, 고대 그리스 북부의 왕국 마케도니아를 지배한 알렉산더 대왕은 나무상자 틈새를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송진과 왁스로 막은 뒤, 무거운 추를 매달아 잠수를 시도했다. 역사상 첫 잠수 시도다. 시간이 흘러 15세기 이탈리아의 예술가이자, 발명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잠수함 설계도를 처음 그렸다. 이 설계도는 ‘악한 사람이 이용하면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이유로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함께 잠수함은 진보했고, 우리 해군도 잠수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4년 소형잠수함인 돌고래급 개발을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 장보고급(3000t급)을 탄생시켰다. 지난달 방문한 경남 진해 ‘국가전략부대’ 잠수함사령부와 한화오션 옥포조선소는 해군 잠수함의 눈부신 기술 발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도산안창호함이 건조될 당시 각 섹션구간이 연결되고 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장보고-Ⅲ급 배치(Batch)-II 건조 한창

경남 거제에 위치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규모의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였다. 거제도의 상징으로 불리는 갠트리 크레인은 자체 무게 5500t, 900t급의 중량물을 최고 78m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핵심 시설이다. 특수선 생산공장은 총 13만5000㎡(4만 1000평)로, 조선소 내부를 차로 이동해도 한참을 움직여야 했다.


특수선 3공장에 들어서니 한 눈에 봐도 입이 벌어지는 잠수함 형태가 들어왔다. 3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잠수함은 장보고-Ⅲ급 배치(Batch)-II 1번 함과 2번 함이었다. ‘배치’는 같은 종류로 건조되는 함정들의 묶음을 뜻하며, Batch-I → II → III로 갈수록 성능 개량이 이뤄진 군함을 뜻한다. 다만, 이날 현지 공장에서 건조 중인 잠수함들은 명명식을 하지 않아 이름이 없었다.


장보고-III Batch-II는 우리 기술로 처음 설계·건조한 도산안창호급 잠수함보다 크기와 배수량이 대폭 커졌다. 길이 89m, 수상 배수량 3600t급의 장보고-III Batch-II는 AIP 탑재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으로, 수중 작전능력·탐지 능력·무장 등에서 앞선 기술이 적용된다.


장보고-Ⅲ급 배치-II는 잠수함 형태인 원통 구조가 아니었다. 잠수함을 임무별 7개 섹션으로 나눈 뒤 특수용접작업으로 이어 붙였다. 마치 무를 썰어놓은 듯 토막 나 있었다. 섹션마다 10번대 번호가 붙는데 장보고-Ⅲ급 배치-II의 10번 섹션은 함미다. 기존의 잠수함보다 프로펠러의 날개인 블레이드의 수가 많았다. 이중락 생산기획부 파트장은 “블레이드의 수가 많으면 추력을 늘리는 대신 소음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옆 생산라인에는 50번 섹션의 내부 용접작업이 한창이었다. 섹션 직경 크기만 7.7m로 대형 배관을 연상케했다. 섹션은 제 자리에서 굴리면서 내부용접을 했다. 아래를 보며 용접을 해야 불량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20m 높이의 벽을 넘어 옆 라인으로 넘어가자 비화기 작업공정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벽은 불을 다루는 생산라인과 구분하기 위한 화재방지책이었다. 비화기 공정에 오니 완성된 잠수함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209급 정운함이었다. 6년6개월마다 모두 구조물을 뜯어내고 내외부를 정비하는 창정비가 한창이었다. 정운함은 한눈에 봐도 장보고-Ⅲ급 배치-II에 비해 작은 크기였다.


최신예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잠수함계 명품"

경남 진해 군항에선 한화오션에서 건조된 최신예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SS-083)이 화려한 외관을 뽑내고 있었다. 도산안창호함은 우리 기술로 독자 설계·건조한 첫 번째 3000t 잠수함이다. 잠수함사령부 이수열 사령관은 도산안창호함을 ‘명품’에 비유했다. 도산안창호함은 ‘장보고-Ⅲ’(KSS-Ⅲ) 잠수함 1번 함으로서 길이 83.5m, 폭 9.6m 크기다. 이는 기존 ‘장보고-Ⅰ’(55.9m·6.2m, 1200톤급) ‘장보고-Ⅱ’(65.3m·6.3m, 1800톤급)에 비해 대폭 커진 것이다.


맨홀 뚜껑 형태의 도산안창호함 해치를 열고 들여다본 잠수함은 지하 1층이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구조였다. 내려가는 통로는 좁았다. 비좁은 통로만큼이나 내부는 좁았다. 잠수함 내부 공간은 거주 구역과 무장 적재실, 전투지휘실, 기관실 등으로 나뉘어 있었고, 천장과 벽면엔 각종 배관과 전선·밸브 등이 보였다.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도산안창호함이 건조될 당시 섹션이 연결되고 내부 시스템을 장착시키고 있다.

도산안창호함 내부는 기존 잠수함보다 넓었다. 장보고급과 손원일급은 승조원 숫자와 비교해 침실과 침대가 부족해, 당직자가 침대를 비우면 이를 다른 사람이 쓰는 식으로 공유하는 이른바 ‘벙커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도산안창호 함은 6인·3인실로 나뉘었고 함장실은 유일한 ‘독방’을 사용했다. 해군은 올해부터 잠수함에 승선할 여군 승조원도 선발해 내년부터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여군 장교와 부사관에게는 여군용 별도 1개 침실이 주어질 예정이다.


도산안창호함 내부엔 잠수함의 ‘두뇌’인 지휘통제실, ‘심장’인 기관실과 함께 강력한 화력을 내뿜을 수 있는 무장 시설이 있다. 잠수함 앞부분엔 수직발사관(VLS) 6개와 유도탄·어뢰·기뢰 등 20여발을 5분 안에 자동 재장전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VLS에 탑재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지상 핵심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도산안창호함 승조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
기존 잠수함보다 커진 도산안창호함의 내부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잠수함과 전력 배치된 잠수함은 안보는 물론 ‘K-방산’의 주역으로 꼽힌다. 최근 전차와 자주포, 경공격기 등 한국산 무기를 대거 사들인 폴란드가 잠수함 도입 사업에 착수하고 있는 만큼 K잠수함이 세계 시장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한화오션, 호위함 수주사업 놓고 도전장

한화오션은 해군의 신형 유도탄 호위함 5번함인 ‘대전함’ 정비도 한창이다. 대전함은 역사가 깊은 군함이다.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는 일본 제국해군이 사용하던 소해정을 인수해 운용했다. 조선해안경비대는 1번함에 대전이라는 함명을 부여했다. 대전함은 1979년 7월과 1980년 11월 남해로 침투한 북한의 무장간첩선 격침작전에 참가해 공을 세우는 등 24년간 영해수호에 앞장 서왔다.


2000년 3월 퇴역한 DD-919 대전함의 함명은 한화오션이 건조한 대구급 호위함, 'FFX Batch-Ⅱ' 5번함으로 함명이 되살아났다. 엔진은 가스터빈과 추진전동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추진체계로 수중방사소음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함정이 신속하게 접근하거나 회피할 수도 있다. 특히 국산전투체계는 대공, 대함, 대잠, 대지, 복합전을 수행하기 위한 3차원 레이더·추적레이더·전자광학 추적장비·전자전 장비 등의 센서와 함포, 유도탄과 어뢰 등의 무기를 연동해 표적을 탐지, 추적, 위협평가 무장통제를 통해 지휘결심과 교전임무를 수행한다.


한화오션은 1983년 12월에 인도된 초계함(PCC) 안양함 발주를 시작으로 42년간 100여척(5월 기준)이 넘는 특수선을 건조했다. 이달 진행되는 '울산급 Batch-Ⅲ' 수주전에도 도전장을 내 걸었다. 울산급 Batch-Ⅲ은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데 3500t급 호위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1번함은 HD현대중공업이, 2·3·4번함은 SK오션플랜트(삼강엠앤티)가 수주했다. 2·3·4번함은 저가 수주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한화오션은 5·6번함 수주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업계는 HD현대중공업이 임직원들의 군사기밀 논란으로 입찰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2020년 9월 특수선사업부 소속 직원 9명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 가운데 8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특수침투정은 물론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장보고-Ⅲ Batch-Il 잠수함 등 관련 자료를 불법 촬영해 회사 내부방에 올리는 등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받아 수주전에서 힘들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화오션은 최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에서 합동화력함 모형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합동화력함은 탄도·순항·요격 미사일 등 100발 이상을 장착해 북 핵 도발 시 ‘미사일의 비’를 퍼부을 수 있다. 합동화력함은 대형 이지스구축함 크기인 배수량 8000t급으로 길이 150m, 폭 20여m에 달하며 이 같은 함정의 도입 추진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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