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은 1990년대 바뀌었다

최종수정 2022.09.26 15:45 기사입력 2020.07.18 08:50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마(K-SAM 저고도 지대공 미사일). 국과연과 13개 방산업체가 1987년 개발에 착수, 1997년 10월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김민욱 월간 국방과 기술 편집장]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방정책, 특히 군 구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는 병력위주의 군에서 기술 집약형 군으로의 전환, 즉 군사력의 현대화였다. 군구조가 기술 집약형으로 개혁될 경우 병력 수는 줄어 병력유지비는 감소될 수 있으나, 첨단장비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는 결국 국방예산의 증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또한 첨단 기술개발을 위한 비용투자의 증액이 요구되고,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제반여건 조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시대에 국방비를 증액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소련의 붕괴를 시발점으로 냉전이 종식되었으나, 세계적으로 양적 전력증대보다 군사 첨단화를 지향하는 추세로 변함에 따라 방위산업의 기술개발 필요성은 오히려 증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에 비해 우리나라의 핵심기술 개발 여건은 선진국 수준과 비교했을 때 아직 열악한 실정이었다. 그 동안 1980년대의 정책적 변화와 현실적 여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핵심기술에 대한 투자보다는 조기 전력화 달성을 더 중시해 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방부 내 과학기술관료가 10% 미만에 불과했고,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국방비 대비 3% 남짓으로, 11~15%에 이르는 선진국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수준이었다. 기초·핵심기술 연구비용 대 체계개발 연구비용의 비율이 1:4 정도로 핵심기술에 대한 투자가 약한 편이었고, 대학지원 기초 연구예산도 약 50억 원으로 전체 국방 연구개발 예산의 2% 미만이었으며 연구 인력 또한 모자란 형편이었다. 예산을 증액한다 해도 한계는 엄연히 존재했고,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방산육성 환경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했다.


▲ 전력정비사업에서 ‘방위력개선사업’으로 개칭= 1996년 12월 10일, 국방부가 작성한 「방위력개선사업 제도개선안」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표되었다. 이 개선안은 형식적인 틀에 얽매여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무기획득 절차를 과감히 통폐합하여 전력화 기간을 단축하고, 무기획득 전 과정에 공개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국방업무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부서간 중첩된 기능조정과 업무체계를 일원화하여 책임성을 강화하고, 군내의 최고 우수인력을 선발, 장기 보직하여 방위력개선분야의 전문성을 제고하는데 목표를 뒀다.


주요 개선내용은 첫째, 무기체계 획득절차를 종래의 9단계에서 6단계로 단축하여 적기전력화를 보장하고, 만성적으로 사업지연의 요인이 되었던 시험평가를 합참 전담책임제로 하는 등 군, 합참, 국방부간의 책임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해 설정했다. 둘째, 투명성 및 공정성 보장을 위한 공개입찰제도 도입으로 합참은 시험평가 대상 장비결정 전에 공개설명회를 개최하도록 하고‘경쟁입찰’ 방식 적용을 원칙으로 했다. 셋째, 연구개발은 정부시책에 부응한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국내에서 개발할 무기체계를 장기소요 중에서 정책적으로 결정하고, 개발인원, 기간, 예산의 실명화로 개발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도록 하였다. 넷째, 10개의 다양한 문서체계를 5개로 과감히 통폐합하여 불필요한 노력과 시간을 절약하고, 위협분석-대응전략-재원배분 순으로 상호연계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다섯째, 유사기능 통폐합과 명확한 책임한계 설정을 위해 군수국, 획득개발국, 정보체계국 간에 분산된 연구개발 및 획득유지기능들을 조정하여 업무한계가 명확하게 구분되도록 재편성하고, 사업조정관 등 4개 부서에 산재되어 있던 평가 및 분석기능을 통합하여 독립적인 평가분석 기능이 활성화되도록 장·차관 직속으로 전력분석평가관을 신설했다.


여섯째, 제도개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인력쇄신을 통한 전문성 극대화를 위해 방위력개선 업무담당 인력의 3분의 1 수준인 140여명을 1997년부터 교체, 보임 토록 했다. 이와 함께 향후 우수 전문인력이 소신껏 근무할 수 있도록 방위력개선 전담 특기 및 자격 제도의 신설과 함께 전문 직위를 설정하여 이 분야 전문가들이 해당 상위직위 진출이 가능하도록 근무여건을 보장하는 국방 전문인력 인사관리규정을 1997년 초까지 제정토록 하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방위력개선과 관련된 국방체계관리 교육과정을 1997년 말까지 국방대학원 내에 신설키로 했다.


일곱째, 무기중개상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탈피해 무기획득 정보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종래의 군수무관제도를 보완하여 해외무기정보 수집기능을 대폭 확대하고, 1997년 합동무기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담당요원들이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1998년부터 실무적용이 가능하도록 무기획득업무 전산화 추진과 CALS 등 국방정보화사업도 조기에 추진토록 했다.


여덟째, 무기중개상을 제도권 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계약이행 및 사후관리까지 외국 업체와 연대책임을 질 수 있도록 자격 및 등록기준을 강화하고, 정기 및 수시보안상태 진단을 통하여 부적격업체는 등록을 취소하는 등 통제책을 강화했다.


아홉째, 향후 공개행정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위력개선사업 관련문서의 비밀분류기준을 완화하여 재설정하고 특히 공개입찰로 업체에 공개될 문서들을 평문으로 전환토록 할 것을 밝혔다.


열 번째, 국방부 산하 연구소 활성화를 위해 관료화된 조직을 생산성 있는 사업위주 조직으로 1997년부터 전면 개편하고, 국방정책 및 업무수행에 가장 적합한 연구소로 발전하도록 국방부의 조정 및 통제기능을 강화했다. 이러한 조치는 방위산업의 효율 촉진이라는 면에서도 긍정적인 개혁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율곡비리 등을 통해 국민에게 심어진 나쁜 이미지를 일소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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