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방산의 전환기로- (9)북 지휘부 타격할 현무미사일 개발은

최종수정 2020.06.27 10:00 기사입력 2020.06.27 10:00

1987년부터 실전 배치된 현무 지대지미사일 1987년부터 실전 배치된 현무 지대지미사일


[김민욱 월간 국방과 기술 편집장]▲안정과 성장의 시기(1990년대 ~ 2000년 초)=1970년대부터 1990년에 이르기까지 방위산업은 양적ㆍ질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었던 기간이다. 전력증강 차원에서 보면 생산 공장 하나 없는 환경에서 20년 만에 전체 획득비용의 65%를 국산 무기체계가 차지하게 되었고, 9000억 원의 실질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약 4조 7000억 원의 양산물량을 조달(해외 구매 시 약 5조 8000억 원 추정)했으며, 1조원 이상의 획득비용을 절감했다. 또한 방위산업의 연구개발로 이루어진 정밀기술개발은 민수산업으로 이전되어 현격한 민수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방산업체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89년 기준으로 안정성 측면에서 부채비율은 방산업체가 367%로, 일반 제조업체의 257%를 훨씬 상회하였고, 활동성 측면에서 기업 총자본의 회전율도 0.7회전으로, 일반 제조업체의 1.1회전을 밑돌았다. 수익성에 있어서는 총자본 경상이익률이 -0.61%,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0.85%로, 일반 제조업체의 2.7%와 2.6%에 비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 이르렀고, 생산성 측면에서도 1인당 부가가치액이 방산업체 1,270만원, 일반 제조업체 1,500만원으로 방산업체가 일반제조업체의 85%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설비투자면에서도 일반제조업체가 72%인 반면, 방산업체는 35%로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1990년대의 분위기는 냉전 종식에도 불구하고 범세계적인 무기 첨단화 움직임, 방산시장의 확대는 방위산업을 주요 산업으로서 높은 가치를 갖게 만들었다. 오히려 구 공산권 국가들이 더 이상 위협적 존재가 아닌, 협력 가능한 대상으로 변하면서 시장의 폭은 더 넓어졌다. 방위산업의 가치가 점차 큰 비중으로 자리하면서, 한국의 방산업계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1990년 4월 미 국방부의 '동아시아 전략구상'이라는 보고서를 통한 주한미군 재조정 안이 발표되면서 군 작전통제권의 환수나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군은 이러한 논의가 시기상조이며, 이에 대비한 충분한 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전쟁억제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에 따라 평시작전통제권만 환수하는 것으로 합의했으나, 당시 주한미군 철수와 작전통제권 이양에 대한 논의는 다시 자주국방에 대한 절박성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인식은 군 구조 개혁과 국내 방위산업의 내실화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 체계개발에서 핵심개발로=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 심화와 북한 무기체계의 첨단화, 국내소요의 한계 등은 능동적 연구개발과 수출지향, 핵심기술개발의 시급함을 부각시켰고, 무기체계 국산화와 민간주도 연구개발의 필요성, 국방체계의 질적 향상 등 방산업계 전반에 걸친 방산 발전방향에 대한 공감으로 방산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기체계 획득관리규정에 있어서 제반절차가 복잡하고 중복되는 사항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사업 결과에 대한 책임한계가 모호한 점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국방부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일소하기 위하여 1989년 4월부터 전력증강 절차개선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보완, 개선하여 1990년 3월부터 시행했다. 중장기 무기체계의 소요제기 절차를 단일화하고 획득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행정 처리기간이 단축되었고, 신규획득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거나 혹은 기술도입 생산한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두 가지 방법이 모두 불가한 경우에만 해외구매로 협상하도록 함으로써 선진기술 획득과 국내산업 발전을 도모했다.


또한 각종 심의회 및 위원회 편성에서도 이를 축소, 운영하고 결재권도 하향 조정함으로써 업무의 신속성은 물론 책임성을 제고토록 하였다. 기술도입 생산 및 해외구매 장비에 대한 시험평가는 그 방법을 개선하여 대상장비의 신뢰성을 보장하였고, 기술도입 생산시 대상기종에 대한 성능을 확인하여 기종을 결정하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시험평가를 실시한 후 무기체계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이 절차개선으로 인해 과거의 복잡했던 절차가 간소화됨에 따라 능률성과 신속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 818 계획= '818 계획', 또는 '818 군구조개편'으로 불리는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이 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1990년 9월에 마련됐다. 818 군구조개편은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5월 6일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방태세 전반을 점검하여 제2의 창군에 버금가는 자세로 혁명적 개혁을 추진할 것"을 주문하면서 1988년 8월 18일, 오자복 국방부장관과 최세창 합참의장, 각 군 참모총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용영일 합참 전략기획국장이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 연구계획'에 대해 보고했다. 이 계획은 보고 날짜를 따서 일명 '818계획'으로 불리게 됐다.


이러한 계획을 통해 군의 전력소요 기능을 대폭 강화하여 현대적인 소요기획을 수행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는 전력증강의 방향을 양적(量的) 군구조에서 정보?지식 중심의 기술집약형 군구조로 전환하고 동시에 미래 네트워크 중심전에 부합하는 첨단 전력을 구비하겠다는 것이었다.


818계획에서 전력증강 및 방위산업에 관한 부분은 전력소요기획 및 획득 관련 조직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국방부의 기존 방산국을 획득개발국으로 재편하고 전력계획관을 신설하여 중기계획 기능을 강화했다.

특히 합참의 기능과 조직을 대폭 보강했는데, 합참이 기존의 1개 본부장과 4개 국 및 1개 기능실의 규모에서, 4개 본부장, 11개 부 및 4개 기능실로 대폭 확대 개편되면서 전력소요기획 분야도 기존의 1개 국(연구개발국) 및 1개 과(전략기획국 목표기획과)이던 규모가 1개 본부(전략기획본부), 3개 부(전력발전부, 무기체계부, 지원본부의 관리부) 규모로 확대됐다


그리고 각 군기관에서 갖고 있던 소요제기 기능을 '의견제시' 기능으로 변경하고 합참의 소요기획 기능을 강화했다. 소요제기 기능은 1995년에 합참의 소요결정 기능을 강화하면서 각 군 기관에 환원되었다. 818계획은 국방부와 합참의 전력소요기획 및 방위사업 관련 조직과 기능을 대폭 강화하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방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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