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방어전의 신화- (1)다시 내준 서울

최종수정 2022.09.26 15:59 기사입력 2020.03.20 10:08

1.4후퇴 당시 끊어진 한강 철교 부근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나룻배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중공군의 참전은 이처럼 전쟁의 향방을 완전히 바꾼 충격이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1950년 10월 25일 참전이후, 중공군이 연이어 가한 공세에 아군은 혼비백산하며 후퇴하기 바빴고 사기는 더 이상 추락할 곳도 없을 만큼 떨어졌다. 싸우겠다는 의지는 사라졌고 최대한 중공군과의 접촉을 피하고자만 했다. 12월 4일, 평양을 포기하고 불과 보름 만에 38선 부근까지 후퇴하는 동안 미 8군 담당 지역에서 제대로 된 교전이 한 번도 없었던 예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38선에서도 중공군을 막을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듬해 1월 4일, 얌전하게 서울을 적에게 다시 내주고 아군이 다음 방어선을 구축한 곳은 37도선 부근인 평택~삼척선이었다. 그러나 유엔군은 여기서도 중공군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처럼 홀연히 나타난 중공군의 존재는 통일의 환상에 들떠있던 아군을 체념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것은 일선의 병사들 뿐 만 아니라 전쟁을 막후에서 지휘하던 워싱턴 당국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비관적 사고는 더 했다. 불과 두 달 전에만 해도 본국에 보급량을 줄여주도록 요청했을 만큼 확신에 가득 찼던 승전에 대한 기대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리자 미국은 만일 37도선에서 50km만 더 후퇴하여 금강선까지 밀려난다면 미련 없이 한반도를 포기하고 완전 철군할 비밀 계획을 세워 놓았다.


미국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트루먼 대통령의 즉각적인 결정으로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쟁 발발 이전 상태인 38도선까지만 회복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지 중국과의 확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1951년 1월의 모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소련이 놀랄 만큼 미군의 참전도 빨랐지만 갑자기 손을 뗀다고 하등 이상할 것도 없었다.


신임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리지웨이는 워싱턴의 철군 결정을 알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실시한 소규모 수색작전은 엄청난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간과하지만 이때가 한국전쟁 최대의 위기였다. 만일 워싱턴의 생각대로 미군이 철수했다면 대한민국은 종말을 고했을 것이다. 워낙 중차대한 문제다보니 동요를 우려하여 한국 정부에 어떠한 언질을 주지 않았고 미군 내에서도 극히 최고위층 일부만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를 모르던 미 8군은 중공군의 공세가 재개된다면 37도선을 포기하고 다시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방어선을 구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암울하게도 당시 정황상, 중공군의 공세가 한 번 더 이어진다면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처럼 참담한 시점에 전임자의 갑작스런 순직으로 말미암아 황망히 신임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는 중공군이 서울 점령 후 예상과 달리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위력수색(威力搜索)을 시도했다. 1개 연대 규모의 정찰대로 하여금 소규모 작전을 펼친 것인데 사실 이때만 해도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고 단지 적의 다음 공세가 언제 쯤 개시 될 것인지 정도만 확인하려 했다.


울프하운드(Wolfhound)로 명명한 이 작전을 위해 1개 전차대대와 포병 및 공병이 배속되어 증강된 미 25사단 27연대가 1951년 1월 15일, 작전에 나섰다. 준비를 마친 27연대전투단은 1번 국도를 따라 서서히 북진하여 중공군이 공세를 준비하고 있으리라 판단되던 수원까지 진출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험 삼아 실시된 이 작전은 또 다른 한국전쟁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수원에 진입한 27연대전투단은 대규모의 중공군과 조우했으나 교전이 목적이 아니어서 공군의 엄호 하에 차분히 철수했다. 그러나 이때 얻은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직접 확인한 중공군은 너무 지쳐있었고 특히 보급에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리지웨이는 중공군이 차기 공세를 즉시 가하기는 힘들므로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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