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베토벤의 청각 손실…'납 중독' 맞다

최종수정 2024.05.07 21:22 기사입력 2024.05.07 20:33

모발서 일반인 100배 납 검출
19세기 유럽선 와인에 납 함유
애주가 베토벤…'납 와인' 즐겨

위대한 음악가였지만 정작 본인은 청각 장애 때문에 자신의 곡을 듣지 못했던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가 청각 손실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린 이유가 밝혀졌다. 베토벤은 '납 중독' 때문에 몸이 쇠약해졌다는 새 연구 결과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새너제이 주립대 베토벤 연구소의 윌리엄 메리디스 원장, 메이요 클리닉 연구실장인 폴 자네토 박사 등 연구팀은 6일(현지시간) '임상화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베토벤의 사망 원인을 이같이 밝혔다.


이번 연구는 중금속 분석 장비를 갖춘 메이요 클리닉의 특수 실험실에서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 성분을 분석한 결과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호주 출신 사업가 케빈 브라운씨가 제공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련 없음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실험 결과, 첫 번째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에선 1그램(g)당 258마이크로그램(㎍)의 납이 검출됐다. 브라운씨가 제공한 두 번째 머리카락 뭉치에선 1g당 380㎍의 납이 검출됐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의 납 함유량은 1g당 4㎍ 미만에 불과하다. 베토벤의 모발은 일반인 대비 100배 가까운 수준의 납이 함유돼 있었던 것이다.


결과를 두고 자네토 박사는 "베토벤이 고농도의 납에 노출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내가 본 모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또 베토벤의 모발에선 정상 수치 대비 13배 더 높은 비소가 검출됐으며, 수은도 정상 수치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성 물질 전문가인 데이비드 이튼 워싱턴대 명예교수는 NYT에 "베토벤의 위장 문제는 납 중독 증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또 베토벤이 앓았던 청각 장애의 원인도 "다량의 납이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손상했을 수 있다"고 봤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렇다면 베토벤은 왜 납에 중독된 채 살았을까. 연구진은 이번 논문에서 납 노출의 주요 원인으로 와인, 식이 요인, 의학적 치료 등을 꼽았다.


제롬 은리아구 미시건대 명예교수는 베토벤이 살았던 19세기 유럽에선 납이 음식물이자 약재였다고 설명했다. 와인을 비롯한 음료, 의약품, 연고 등에 납이 쓰였다는 설명이다. 특히 값싼 와인에는 다량의 납이 함유됐는데, 단맛이 부족한 와인에 일명 '납 설탕'을 첨가해 풍미를 끌어 올렸다고 한다.


메레디스 원장은 베토벤이 하루에 한 병의 와인을 마실 정도로 음주를 즐겼으며, 이 때문에 납에 중독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애주가인 베토벤은 사망하기 전 출판사로부터 12병의 와인을 선물 받기도 했는데, 당시엔 이미 몸 상태가 너무 나빠 술을 삼키지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때 베토벤은 "애석하다. 애석하다. 너무 늦었다"며 탄식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NYT는 전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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