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함안 미끄러운 보도블록, 골절 사고에도 ‘그대로’

최종수정 2024.05.07 18:03 기사입력 2024.05.07 18:03

군청 “미끄럼 방지제 도포, 다른 방안 마련도”

경남 함안군이 표면이 매끄러운 소재의 ‘보도블록’을 밟고 미끄러져 골절됐다는 민원에도 해가 바뀌도록 조치하지 않은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2022년 겨울 함안군민 A 씨는 가야읍 인도를 걷다 보도블록을 밟고 미끄러져 손목이 부러지는 등 팔을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경남 함안군민이 국민신문고에 올린 민원. [이미지출처=국민신문고]

A 씨의 자녀 B 씨는 어머니가 오랜 기간 치료를 다니며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이듬해 국민신문고에 보도블록 미끄러움 방지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고 밝혔다.


B 씨는 게시글을 통해 “문화재가 그려진 보도블록은 비나 눈이 오면 매우 미끄럽다”며 “그 보도블록 때문에 미끄러져 다친 사람도 있다. 교체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보도블록 교체가 예산 문제로 어렵다면 미끄럼 방지를 위한 다른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 거리에 설치된 함안 아라가야 출토 유물 보도블록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가 붙어있다. [사진제공=독자]

A 씨가 밟고 미끄러진 보도블록은 함안군이 아라가야시대 유물을 새긴 것으로 돌판을 매끄럽게 깎아낸 석재판재로 만들어졌다.


군에서 출토된 수레바퀴 모양 토기, 불꽃무늬 굽다리 접시, 집 모양 토기, 배 모양 토기 등이 그려져 가야읍 사거리와 쌈지공원 등 1300여곳에 설치돼 있다.


당시 군청 담당부서는 “석재판재 보도블록은 비가 오는 날 밑창이 미끄러운 슬리퍼 등이 접촉하면 일부 미끄러짐 현상이 발생하는 걸로 확인됐다”며 “미끄럼 방지 조치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올해 5월이 되도록 군청에선 이렇다 할 방지책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이에 보도블록 설치 지점 인근 상인 등이 보도블록 위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임시방편으로 부착하거나 군민들이 해당 보도블록을 피해 다니는 지경이다.


B 씨는 “담당 부서가 미끄러짐 위험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조치 계획을 검토 중이라 민원인을 안심시켰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달라진 게 없어 글을 올렸다”며 “군민이 다쳤는데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사고 위치를 묻지도 않더라”고 했다.


“미끄럽다는 걸 알면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오죽하면 군민들이 보도블록에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여놨겠냐”고 말했다.


“눈이라도 오면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눈이 오는데 슬리퍼를 신고 나가진 않지 않냐”며 “올해는 유독 비가 자주 내리는데 누군가 더 크게 다쳐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으로 수습할 거냐”라고 반문했다.


B 씨는 “어머니는 손목을 다치셨으나 누군가는 허리나 머리를 다칠 수도 있지 않냐”며 “함안은 노령 인구가 비교적 많은 만큼 낙상사고 위험이 크니, 군민들이 안심하고 발 디딜 수 있도록 빠르게 조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남 함안 출토 유물 보도블록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민원. [이미지출처=함안군청 군민의 소리 게시판]

해당 보도블록의 미끄럼 대책 마련 민원은 2022년 7월 군청 누리집 ‘군민의 소리’ 게시판에도 올라왔다.


민원인은 “비만 내리면 아슬아슬한 얼음판을 걸어가는 기분”이라며 “문화를 홍보하는 것도 좋지만 군민 안전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고 했지만, 담당부서는 “일반적인 경우 미끄러짐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설치했다”며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보행도로 미관 및 우리 군 출토 유물 홍보 등을 위해 설치됐으니 널리 이해해 달라”는 답변을 남겼다.


본지 취재에 현 담당부서 관계자는 “해당 민원이 다른 부서를 통해서도 종종 들어와 보도블록의 반대 면이 위로 오게 뒤집은 곳도 있다”라며 “아예 바꾸면 좋겠지만 예산과 공사 기간 등 고려할 점이 있어 당장 교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부서 담당자는 “다음 주 중에 미끄럼 방지제를 해당 보도블록 1300개 모두에 뿌리려 한다”며 “실험 결과 미끄럼 방지제 도포 시 물기가 있어도 미끄러움이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돼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와 별개로 다른 방안도 마련해 군민이 안전하게 다니도록 노력하겠다”며 “관련 민원에 대한 부분도 꼼꼼히 확인해 알맞게 조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남취재본부 이세령 기자 ryeo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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