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군립미술관 '재현과 위로' 특별전…지친 마음 '처방전'

최종수정 2024.05.07 10:42 기사입력 2024.05.07 10:42

제26회 함평나비대축제 기념 특별 전시
노여운·임남진·허수영·황선태 '위로' 처방
선명한 사회비판, 인간 모순성 자각 계기
현대사회 '따뜻한 가슴' 품은 산뜻한 작품
일상 지친 마음, 위로·치유 '미술 순기능'

편집자주미술관에서 기획 전시전은 '좋은 미술은 무엇일까'다. 미술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작품들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 뚜렷한 취향으로 스스로 평가 절하한 작품들은 즐겁고, 밝고, 예쁜 그림이거나, 작가의 감정에 충실한 그림들이다. 때때로 그림들은 불합리한 현실을 외면하고 나아가 왜곡하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은 희·노·애·락이다. 여러 감정과 가치관은 삶을 지탱한다. 미술품도 다양한 제작 동기와 형태로 존재하고, 사람들은 이를 여러 가지 이유로 즐긴다.

전남 함평군립미술관은 지난 3월 26일~6월 2일 <재현과 위로>라는 주제로 총 50여 점을 인기리에 전시한다. 이 기획전은 제26회 함평나비대축제 기념 특별 전시다.


노여운·임남진·허수영·황선태 등 4명의 신진 작가들은 저마다 일상의 삶과 풍경을 따뜻한 눈길로 자아낸 새롭고 산뜻한 작품이다. 인간의 삶과 역사, 내면 등이 다채로이 녹아 있다.


이번 <재현과 위로> 기획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작품들은 현대사회를 바라본 냉철한 눈이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그려냈다. 그림은 주변의 부당함도 강하게 경계하지만, 지친 마음을 쉽게 위로할 믿음도 담아낸다.


이기적인 비판과 지적이 마구잡이로 펼쳐진 시대에는 외려 위로가 먼저다. 현실에 자각과 증언도 해야겠지만 일상에 지친 마음의 위로와 치유는 미술의 순기능이다.


노여운, 남겨지다 116.7x45.0 oil on canvas 2022.

노여운 : 사람의 흔적을 그린 풍경

노여운 작가는 변두리 도시 골목의 이발소, 슈퍼, 세탁소 등과 한적한 시골의 건물들을 즐겨 그린다. 이런 소재를 즐겨 그린 동기는 "그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사라진 과정을 본 뒤"라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개발의 바람을 비껴간 풍경들을 기록하듯 그린다. 그가 그린 집과 골목은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 오래된 건물, 낡은 가재도구들, 자투리땅에 심은 채소, 스티로폼 상자로 만든 화분 등에는 삶의 흔적이 정겹게 베여있다. 그는 오래된 공간에 여러 사람의 흔적이 축적된 풍경에서 편안함과 애착을 느끼게 한다.


그는 "골목길에 쓸쓸함과 그리움, 편안함, 고독함, 따뜻함 등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감정들과 함께 사람의 흔적들이 준 따뜻함과 편안함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그림을 본 순간 처음 느낀 감정은 '따뜻함'이다. 도시 풍경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낸 어린 시절의 풍경이며, 한적한 시골집은 방학 때 놀러 간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시골의 정겨운 추억을 보여준 모습이다.


추억의 장소를 그린 풍경이 따뜻함과 편안함은 작품이 간직한 색상이 큰 역할을 한다. 도시 풍경의 색깔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어두운 밤거리의 불빛, 회색 도시, 화려하고 세련된 색깔 등이다.


작가가 선택한 색은 푸근하고 따뜻한 색이다. 마치 저녁노을의 따듯한 빛이 건물을 감싸는 것 같다. 그는 낡은 건물들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간직한 어두운 색상을 대신해 사람의 따뜻함이 묻어나도록 색상을 의도적으로 표현했다.


임남진, 나는 너는, 한지에 채색, 80×130.5cm, 2021.

임남진 : '단순 명료한 화면'…깊고 조용한 색이 주는 '힘'

임남진 작가는 2007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전통 불화를 빌려 인간군상을 그린 그림은 부조리한 사회를 들춰냈다.


2018년 전시에서부터 보여준 작품에서는 적막하고 서늘한 풍경을 구현했다. 파란 하늘, 낮달, 전봇대, 전선과 전선 위의 새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쓸쓸하다. 기존의 불화가 세상을 향한 날이 선 시선과 풍자였다면, 이때 작품은 작가의 감정이 사물과 풍경으로 교감해 충실히 재현했다.


그는 "수없이 엉킨 전깃줄과 전선 줄 사이로 파란 하늘과 얇게 뜬 낮달, 밤에는 가로등과 달빛을 벗 삼아 우두커니 제 자리를 지킨 전봇대 모습이 세상과 내 주변의 인간 군상으로 연결된 삶의 풍경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의 정서는 젊은 날 전투력을 상실한 작가의 뒷모습을 떠나 거친 시절 잠시 숨었던 작가의 깊은 본연의 정서가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 순간 주변의 풍경과 교감을 나타낸다.


그의 작품은 겨울 찬바람에 코끝이 찡한 새벽 하늘빛을 닮았다. 푸른 하늘과 달빛은 서러움과 외로움이 엇갈리면서도 마음 한편을 씻어낼 충만감으로 가득 채운다.


작품을 구성한 큼직한 면 분할과 한지를 염색하듯 따낸 색감에서 작품 완성도를 한층 높인다. 최근작 '연서' 시리즈에서 보여준 클로즈업한 편지 봉투는 형식적 단순함을 넘어 그 단순함에 담긴 깊은 사연이 보여준 이중성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허수영, 100orchids, oil on canvas, 180x130cm, 2011.

허수영 : 겹치고 포개진 이미지…"수고로움에 늘 감탄"

책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을 필사하며 마음에 새기기도 한다.


허수영 작가는 잘 만들어진 사진집에 있는 이미지를 캔버스에 필사하듯 옮긴다. 마치 식물도감을 한 장씩 넘기듯 차례대로 식물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빼곡히 담아낸다.


이런 작품이 이미지를 채워간 작품이라면 시간을 채운 작품도 있다. 한 화면에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한 풍경을 포개어 그린 작업으로 한 작품을 갈무리해낸다.


그는 자기 그림에 "먼저 가장 큰 특징은 중첩해서 많은 것들을 그린 것이다. 그린 것 위에 또 그리고, 그린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중첩한 이유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풍경의 재현일 뿐 아직 그가 원하는 그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덧칠하고 겹치기를 반복, 누적된 물감의 두께는 그릴 때 당시의 기분이나 생각이 내포된 응어리 같다"고 덧붙인다. 이런 재현의 누적으로 만든 노동의 결과물은 작가의 수많은 감정의 덩어리자 비로소 그림이라고 믿는다.


그의 작품은 미술은 그리는 것이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잘 그리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노동을 집약한 흔적이 눈으로 보일 때 사람은 감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허수영 작가는 미술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길 바란다. 본인의 그림이 그런 작품으로 남길 바라며, 그 수단으로 선택은 "그리기에 그리기를 더한 것이다. 더 그릴 수 없는 상태까지 끌고 가서 스스로 손을 놓는다"고 전한다.


황선태, 오후의 햇빛이 드는 방, 2011,142x102x5cm, 강화유리, 샌딩, 전사필름, LED.

황선태 : 빛이 주는 위로의 온도

황선태 작가의 작품은 빛으로 완성됐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실내 공간과 그 공간에 놓인 소파, 의자, 화분, 침대 등은 선으로 묘사했다. 창문으로 LED 조명 빛이 든 구조로 작품을 만들었다.


사포질된 반투명 유리의 안개 같은 질감과 일정한 굵기의 녹색 선으로 그려진 사물은 깨어지기 쉽고, 감정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품에 전원을 넣는 순간 따뜻한 온기의 빛이 들어와 가장 푸근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관람자에게 제공한 반전을 경험하게 한다. 움직이는 빛의 줄기는 물줄기나 빗물이 돼 흐른다.


그는 빛이 있으면 사물이 드러나고 빛으로 드러난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사물을 둘러싼 수많은 어떤 것들이 그 빛을 통해 아련히 피어오르며, 빛은 창문을 통해 드러나게 한 직관의 세계"라고 한다.


사물에 생명력을 입히는 빛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빛이 주는 신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줄 안락함과 따뜻한 온기는 매력적이다. 빛이 든 방에서 휴식을 경험한 사람에겐 소소한 일상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빛이 있어 사물의 형태와 색을 인식하고, 회화사에서도 빛은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명작은 빚의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는 그려진 빛이 아닌 실재의 광원을 효과적으로 이용, 기술적인 빛을 심리적인 빛으로 만들어 미술에서 새로운 빛의 효과를 더했다.


"위로받고 위로해 주고픈 맘속 기획전"

<재현과 위로> 전시에 이태우 함평군립미술관장은 "기획전시는 늘 번번이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작품을 추린다"면서 "작품을 거쳐 위로받고 싶은 마음, 위로해 주고픈 마음을 꾀한 기획전"이라고 밝혔다.


미술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번 작품들은 한결같이 현실을 직시한 작품이다. 작가들이 가진 선명한 사회비판과 인간의 모순성을 자각할 계기를 갖췄다.


그런데도 현실을 미술로 위로받을 욕망은 멈출 수 없다. '위로'라는 단어는 현실을 가장 잘 진단한 뒤 받는 처방전 같다. 처방은 체질과 병증에 따라 달라지듯, 전시에 참여한 노여운, 임남진, 허수영, 황선태는 각각 다른 처방전을 가졌다.


노여운은 따뜻한 색감이 주는 풍경에서 인간의 다양한 흔적이 느껴지고, 그 흔적은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며 미소를 짓게 한다. 임남진 작품이 간직한 서늘하면서도 한지에 스며든 깊은 색과 서정적 이미지는 깊은 그리움과 외로움이 주는 역설적인 충만감이 있다.


그림에 순수한 열정을 노동으로 풀어간 허수영 작품은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한 모습에서는 울림이 있다. 황선태 작가의 따뜻한 빛은 어려운 시기를 살아갈 우리를 위로한 무기로 남는다.


작품은 '위로'라는 순기능 외에도 4명의 작가가 보여준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적 성취도 눈 여겨진다.


싱그런 봄이 한창인 5월, 함평 엑스포 공원에 자리한 미술관에서 맘속 위로를 한껏 받을 특별 전시전을 꼭 들러 보시라.



호남취재본부 김건완 기자 yach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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