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문제는 인플레야, 이 바보야!"

최종수정 2024.05.07 11:43 기사입력 2024.05.05 08:00

'인플레이션, 일자리, 주택'.


최근 하버드 케네디 스쿨(HKS)이 18~29세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젊은층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현안들이다. 16개 현안 중 가장 우려되는 2개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가장 많은 64%는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탕감을 추진하는 학자금 대출 문제를 선택한 비율은 26%로 가장 낮았다. 그 다음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사안이 중동 분쟁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컬럼비아대를 시작으로 미 대학가에서 친팔레스타인, 반이스라엘 시위가 확산되고 있지만 중동 문제를 시급한 현안으로 꼽은 응답자는 34%로 뒤에서 두 번째로 적었다. 최근 미 대학가 반전시위가 오는 11월 대선의 주요 변수 중 하나로 꼽히며 매일 신문 지면을 뒤덮고 있음에도 대다수 젊은층의 관심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조사 결과라 눈길을 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인플레이션, 반전시위, 불법이민 등 모두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현안이나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물가라 할 수 있다. 강력한 미 경제에도 유권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과 성과에 대해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배경에도 인플레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7개 경합주 중 1곳에서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앞서고 6개 주에서는 모두 뒤진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경제 그 중에서도 인플레이션이 문제라고 보도했다. 연말까지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응답자는 20%에도 못 미쳤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할 법도 하다. 미 경제는 지난해 초부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제기한 침체 예상을 깨고 나홀로 호황을 구가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반도체지원법(CSA),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글로벌 기업의 미국 내 제조업 투자가 급증하고, 일자리는 넘쳐나고 있다. 너무 호황이라 미 연방준비제도(Fed)조차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몇 년 사이 급등한 물가는 미국인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향수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뉴욕 프라이머리에서 만난 한 30대 유권자는 자신을 바이든 대통령 지지자로 소개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문제"라며 "경제가 좋다는 것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잡힐 듯 하던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올 들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Fed가 가장 주목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올해 1분기 1년 전보다 3.7% 올랐다. Fed 목표치인 2%를 크게 상회하는 것은 물론 전문가 예상치(3.4%)도 웃돌았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일 인플레이션 둔화에 진전이 없다며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예고했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지속 가능한 경로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올해 인플레이션 하락을 예상하지만 지표 때문에 확신이 둔화되고 있다. 금리 인하 시점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 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 가능성은 일축했지만, 3월 예고한 연내 3회 인하 전망 역시 물 건너갔음을 시사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고용시장이 4월 차갑게 식은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미 대선까지는 6개월이 남았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돼 Fed가 금리를 내릴 환경이 조성되느냐가 두 전·현직 대통령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대학가 반전시위와 관련한 칼럼을 게재하며 "교육 수준이 높은 집단에서 활동한다면 젊은층이 가자 문제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대부분의 젊은 미국인에겐 인플레이션, 일자리, 주택과 같은 경제 문제가 훨씬 시급하다"고 전했다. 미국인들은 매일 마트와 주유소에서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를 체감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미 대선만 돌아오면 회자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 구호는 올해도 유효할 전망이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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