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홍세화가 남긴 ‘겸손’, 여야 정치의 숙제

최종수정 2024.04.26 14:55 기사입력 2024.04.26 11:11

진보의 자기성찰 주장했던 지식인
좌우 진영 넘어 약자 위한 삶 실천


연옥 안을 가던 단테는 오만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형벌이 무거워 바닥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가던 선생님이 말했다.

“저쪽을 잘 보아라! 바위를 이고 움직이는 저들이 보이느냐? 하나하나가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것이 보이느냐? 오만한 그리스도인들이여, 가엾은 자들이여, 너희 마음의 눈은 병이 들어 뒤로 가는 발길에 아직도 믿음을 두고 있구나! 우리는 유충들, 최후의 심판을 향해 온전히 날아갈 천사 나비가 되기 위해 태어난 유충들임을 모르는가!” 단테의 ‘신곡’ 연옥편 10곡에는 교만했던 인간들이 연옥에서 형벌의 고통을 받는 광경이 나온다.


이 교만의 죄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오직 겸손이다. 암 투병을 하다가 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고 홍세화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겸손’이었다. 유신체제 말기의 공안사건인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에서 20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좌파’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지만, 그는 화석화된 진보의 자기 성찰을 누구보다 주장했던 지식인이었다. 좌우를 따지는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고 약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런 고인이 ‘겸손’을 유언처럼 남겼다는 것은 오늘날 좌우 진영의 모습이 겸손을 모르는 오만함에 갇혀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 뼈아프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최악의 참패를 당한 것도 겸손을 모르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한 통치가 낳은 결과였다. 윤 대통령은 언제나 자기 생각을 절대시하며 장황하게 사람들을 가르치려 했다. 오늘같이 다양하고 복잡해진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섬세한 조정 능력을 가진 민주적 리더십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일방적인 태도로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이곤 했다. 비판의 소리에는 귀를 닫아버려 ‘불통’이라는 원성을 듣게 되었으니 그만한 교만이 없었던 셈이다.


겸손하지 못한 오만의 해악은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에도 각별히 강조해야 할 문제이다. 지난 21대 국회 4년 동안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행했던 입법 독주를 지켜보았다. 여야 협의조차 건너뛰고 수의 힘으로 많은 법안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졸속으로 만들어진 부동산 관련 법, 징벌적 세제, 공수처법, ‘검수완박’법 등의 피해자는 국민이 되고 말았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반윤 정당’의 의석수는 192석이나 된다. 정권보다도 막강해진 국회 권력이다. 야당들은 선거 과정에서 ‘한동훈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이 조만간 통과시키려는 ‘채 상병 특검법’의 경우는 여당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만, 야당이 다른 특검법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들고나오는 것은 과도하다.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민주당 당선인들은 “중립은 없다”며 강경한 국회의장이 되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와중에 12석에 불과한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원내 제3당의 대표인 나는 언제 어떤 형식이건 윤 대통령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과유불급의 모습이다. 조 대표는 음주 자제 등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10가지 사항을 시시콜콜하게 밝혔다. 하지만 감옥행 여부가 결정될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도 성찰의 책임은 여전하다. 총선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입시비리 같은 범법행위에 면죄부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야당들 또한 국회 권력을 차지했다고 겸손의 미덕을 잃고 오만한 모습을 드러내다가는 다시 역풍을 맞게 됨은 정치사의 법칙이다. 여야는 서로를 반면교사로 삼아 힘의 사용을 절제하고 겸손한 정치를 할 일이다. 홍세화 선생이 남긴 마지막 두 글자가‘겸손’이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추모의 말만 요란할 것이 아니라 고인이 당부한 말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정작 중요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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