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은 공감 "장애인·난민·성소수자 등 약자 보호 앞장서"

최종수정 2024.04.24 18:56 기사입력 2024.04.24 18:56

20년간 공익소송 835건 참여
공익법 교육 및 중개 4000여 명 거쳐가
“수임료 걱정없이 찾을 수 있는
‘친구같은’ 변호사 되고 싶어”

“20년간 공익변호사의 수가 늘고 공익법 지형도 그만큼 확대됐지만, 기술과 사회가 복잡해지고 고도화하면서 약자가 마주하는 인권 침해 사안은 갈수록 첨예해졌습니다. ‘앞으로도 개척의 길은 끝이 없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미지출처=법률신문]

2005년 '공익인권법 재단 공감'(이하 공감)에 합류해 19년간 난민·이주민 인권활동에 몸 담아온 황필규(56·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는 공감이 걸어온 발자취를 묻는 질문에 ‘미래’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답했다. 그는 “국경을 넘는 인권 문제 같은 경우 도움을 요청할 전문가, 해외 네트워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자원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갖추지 못한 경우엔 그냥 책상에 앉아 문서를 뒤지면서 서면을 쓸 수밖에 없다”며 “막대한 자원을 가진 소송 상대방(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공정한 게임을 치를 수 있도록 인적·물적 자원을 모으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황필규 변호사

황필규 변호사 [이미지출처=법률신문]

법률신문은 22일 서울 종로구 공감 사무실에서 공감 구성원들을 만나 소회를 들었다. 20주년에 맞춰 펴낸 책자 맨 앞 "수임료 걱정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친구 같은, 만만한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했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미지출처=법률신문]

2004년 1월 사법연수원(33기)을 갓 수료한 새내기 변호사 4명(김영수·소라미·염형국·정정훈)이 약자에 공감(共感)하는 법률가 단체를 만들겠다며 결성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시작이었다. 20년 사이 공감은 구성원 12명(변호사 9명·간사 3명)이 속한 단체로 자랐다.


공감의 20년은 한국 사회 약자·소수자 인권 신장 활동과 궤를 같이 한다. 난민과 이주민, 홈리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취약 노동자들이 마주한 권리 침해 문제 공론화와 해결에 앞장섰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사회적 참사 피해자와 유족 지원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기후위기 시대 폭염과 폭우, 극심한 한파에 가장 먼저 고통받는 기후 약자의 권리 구제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20년간 공감 구성원들이 동료 공익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참여한 공익소송은 총 835건, 개선 활동을 벌인 법·제도는 총 129건에 달한다.


장서연 변호사

장서연 변호사 [이미지출처=법률신문]

공익변호사 단체들의 '맏이'인 공감은 공익법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 공감이 자리를 잡자 '오로지 후원금과 기부금으로만 운영하며 개인적인 소송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한 후속 공익법 단체들이 속속 설립됐다. 공익법센터 어필(2011년),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2012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2015년) 등이 대표적이다. 20년간 공감이 주관한 공익법 교육 및 중개 활동(사법연수원·로스쿨 실무수습, 자원활동가, 인권법 캠프,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 및 라운드테이블 등)을 거쳐간 사람은 어림잡아 4000여 명에 이른다.


2005년 황필규 변호사가 공감에 합류할 당시만 해도 국내 전업 공익변호사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지난 20년간 10배 이상 불어났다. 사단법인 두루와 법률신문 공동 조사에 따르면 공익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변호사는 117명(2023년 말 기준)이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전체 변호사 3만4660명 중 0.33%에 불과한 숫자다. 법조 안팎에선 이 비율을 1%대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 변호사는 한국 공익법 생태계의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을 위해선 인적·물적 자원이 모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짚었다. "공익법 활동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활동에서 인적·물적 자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일례로 공익변호사들의 낮은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공감 이후에 생긴 단체들의 경우엔 처우가 열악한 곳이 많습니다.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수준의 급여만이라도 확보된다면 공익변호사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일방적인 헌신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지림 변호사

김지림 변호사 [이미지출처=법률신문]

20년간 공감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소송 지원 신청 건수는 2421건. 사회 약자와 소수자 인권 신장의 분기점이 된 소송마다 공감 변호사들이 참여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난민신청자 ‘새우꺾기’ 고문사건(2021년)이 대표적이다. 김지림(35·변호사시험 5회) 변호사는 "법원을 통해 확보한 폐쇄회로(CC)TV 검토 결과 팔과 다리를 등뒤로 연결해 고통스런 자세를 만드는 ‘새우꺾기’ 고문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회상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 구제뿐 아니라 외국인보호소 내의 보호장비 사용 요건과 기간 등 관련 지침이 개선되고 2023년 3월 헌법재판소가 외국인을 무기한 구금하는 출입국관리법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 변호사는 "이주민, 난민 지원을 하는 여러 단체가 수십번의 회의를 거치며 사안 대응을 함께 하고 제도 개선, 피해자 조력, 대중 인식 개선 캠페인 등 다양한 ‘연대 활동’을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강지윤 미국변호사

강지윤 미국변호사 [이미지출처=법률신문]

공감 장애인권팀이 수행한 '지하철 단차 장애인 차별구제청구소송'은 패소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변화를 이끈 소송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지체장애인이 지하철에서 하차하다 사고를 당한 소식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알리며 사건은 시작됐다. 공감은 지하철 승강장 연단과 차량 사이 넓은 간격 때문에 반복된 인명사고를 방지하고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 약자의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1, 2심 전부 패소. 2021년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지하철 역마다 보유하고 있는 '이동식 발판'과 그 제공 서비스는 장애인 승객이 비장애인 승객과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정당한 편의로 볼 수 없다"며 '차별행위'가 맞다고 인정했지만, 차별행위를 시정하지 않은 데 대해선 서울교통공사의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미연(35·7회) 변호사는 "소송이 진행되는 3년간 사회적으로 지하철 단차 및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점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고 이 사건을 필두로 '공익소송의 패소비용에 대한 예외가 필요하다'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며 "2023년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발빠짐 사고’ 예방을 위해 자동안전발판을 확대 설치하겠다고 밝혔는데, ‘휠체어 바퀴 빠짐 사고’와 ‘발빠짐 사고’의 구별 없이 지하철을 통해 모두가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는 내일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인영 변호사

조인영 변호사 [이미지출처=법률신문]

공감 구성원들에게 '국내 첫 공익변호사 단체로서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진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2022년 공감에 합류한 '막내라인'이자 장애인권팀에서 활동 중인 조인영(33·10회)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다. "신입 구성원 입장에서는 공감의 역사와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강합니다. 중요 의제에 들어가서 활동해야 하고 비교적 소외된 의제에 대해서도 '공감이니까'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는데요. 좋은 동기부여가 됩니다."


구성원들은 공감에 합류한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창립 20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감사함과 책임감.' 20주년은 공감 구성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춰 주변을 돌아보고 호흡을 가다듬는 계기가 된 듯했다. 2017년 공감에 합류해 간사로서 모금 활동을 담당하는 임기화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기부회원님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좋은 일 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때마다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그 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은 회원 한 분, 한 분의 마음과 응원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공감이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저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윤지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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