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술이 보약? 만병의 근원?...酒테크 바람

최종수정 2024.04.25 07:41 기사입력 2024.04.25 06:10


술은 신기한 물질이다. 사전적 정의는 에탄올이 함유된 음료를 가리키며 마시면 취하게 된다. 모든 약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중독과 주사를 불러일으켜 악이라는 이도 있다. 술과 관련된 노래만 들어봐도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김동률이 부른 ‘취중진담’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할 때 용기를 얻기 위해 필요한 약이고, 혼성그룹 마로니에의 3집에 실린 ‘칵테일 사랑’이란 노래를 듣다 보면, 술은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트로트 가수 박현빈은 ‘곤드레 만드레’를 부르며 힘차게 이별한 연인에게 돌아오라 호소하고, 바이브의 ‘술이야’에는 이별로 인해 차오르는 슬픔 때문에 맨날 술을 먹으며 힘들다고 한다. 주식시장에서도 죄악주(罪惡株·sin stocks)라 하여 ‘술·담배·도박’을 같은 범주로 분류하고 국민연금과 같은 기금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투자를 줄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 시니어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다. 치매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말도 있다.

술은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이었다. ‘동의보감’에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했다. 옛 궁궐에서는 소주를 관장하는 곳이 수라간이 아니라 내의원이었다. 마취제면서 소독도 되고, 주종에 따라서 혈액순환을 돕거나 약리작용을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전통 문화 속에서 등장한 술은 가양주(家釀酒), 약주가 많았다. 집에서 약재를 넣고 술을 빚어 먹은 것이다. 약효는 심신에 작용한다. 영국에서는 최초 위스키 면허를 의사에게 줬을 뿐만 아니라 흑사병이 심할 때 치료제로도 썼다. 젊은 층에 파티용 술로 인기인 독일 ‘예거마이스터’는 56가지 허브와 향료를 넣고 개발해 천식·위장장애·기침을 억제하기 위해 식후에 마신다. 진(Gin)은 이뇨 작용을 돕고자 주니퍼베리라는 열매를 넣어 만든 증류주로서 의약품으로 개발됐고, ‘진토닉’이란 칵테일로 진화했다.

술과 관련된 좋은 유래를 불러낸 까닭은 ‘주(酒)테크’ 바람 때문이다. 명품 가방이나 예물 시계, 고가의 그림이 차지하던 사치품 재테크 영역에 ‘술’이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며 등장한 것이다. 최근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60년간 오크통에 숙성한 위스키가 약 23억원에 팔려서 화제가 됐다. 왜냐하면 2009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같은 브랜드가 약 7000만원에 팔렸는데, 10년 남짓 동안 가격이 수십 배가 올랐다. 프랑스 와인 ‘로마네 꽁띠’도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구매의향서를 받아 심사한 후에 병당 1억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된다.

서양에서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학자금 마련을 위해 이름 있고 도수가 높은 위스키나 좋은 빈티지의 와인을 매년 생일 선물로 모으기도 한다. 수년 전, 중국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에선 고량주라 부르는 마오타이는 명주(名酒)라 한다. 술 자체 가격도 비싸지만, 묵혀두면 향과 맛이 더 깊어진다고 애주(愛酒)가들은 박스로 구입한다. 일부는 선물하고, 일부는 직접 마시고, 일부는 보관해 자녀에게 물려준다. 중국은 요즘 증시가 안 좋아서 주춤하지만, 오랜 기간 유명 고량주 회사는 주식시장에서 성과도 눈부셨다. 코로나 전후로는 일본 위스키 인기가 높아지자 아예 현지 양조장을 인수해버릴 정도로 술에 대한 투자를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도 40대를 중심으로 일본에 가서 한정판 술들을 사 오고 있다. 환율도 유리한 편이라, 현지 주류 도매상에 따르면 심심치 않게 한국인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에는 와인 옥션이나 펀드, 와인에 대한 역사나 시음법을 가르치는 교양 교실이 잔뜩 열렸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던 50대들은 과거에 사두었던 와인 가격이 크게 올라서 뜻밖에 종잣돈 마련을 했다고 할 정도다. 술과 관련된 유행은 대개 빠르게 움직인다. 한동안 막걸리 열풍이었다가 수제 맥주, 그리고 하이볼에 이어 이제 위스키가 대세다. 국내 면세점과 대형마트에서도 매출이 작년 대비 4~5배씩 급증했다. 얼마 전 강남에 위치한 백화점에 특정 브랜드의 30년산 위스키 5병이 풀렸는데, ‘오픈런’이 있었다고 한다. 대학가에는 위스키 바가 들어서고, 시니어 세대를 겨냥한 각종 최고위 과정이나 해외 크루즈 여행에는 꼭 유명 지식인과 함께하는 양조장 방문과 위스키 맛보기가 포함된다.

기분 내킬 때 마셔버리면 사라지는 술에 대한 재테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신기한 것은 고가의 술이라면 빈 병도 거래된다는 것이다. 중고 시장에서 장식용으로 팔린다. 정품 상자가 있느냐 없느냐, 청결하냐 아니냐에 따라서 적게는 1000원부터 많게는 100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이 매겨진다. 2022년 우리 주류시장은 10조원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다. ‘양보다 질’이란 트렌드 하에 세대 불문하고 고가의 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21년 한 설문에 따르면, 50·60세대는 3분의 1 이상이 ‘잘 만들어진 술과 그 품질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했다. 소장한 세월만큼 가치도 무르익는 ‘자산으로서의 술’이 떠오르는 중이다. 이때 주의할 것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주류 면허가 있어야 술을 되팔 수 있기 때문에, 거래가 문제다.

술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공유했다. 예전만큼 주량이 못 돼 아쉬운 필자의 마음을 시니어 트렌드 독자들과 함께 술테크라는 방법으로 달래본다.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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