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강화 천도'의 흔적 따라서…강화나들길 15코스

최종수정 2024.04.25 07:53 기사입력 2024.04.25 06:00

강화 나들길 15코스의 별명은 '고려궁성곽길'이다. 이름처럼 13세기 몽골 침입 당시 강화도를 수도로 옮겼던 고려왕조의 궁궐과 성곽의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다. 총 11㎞ 길이로 소요 시간은 4시간이다. 강화산성 남문에서 출발해 남장대를 거쳐 서문, 북문과 고려궁지를 지나 동문에 다다르면 끝난다.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려 왕조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양광도의 한 현에 불과했던 강화도는 도읍이라는 뜻의 '강도'로 격상됐고, 궁궐인 '강도 본궐'도 지어졌다. 또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외성과 중성, 내성을 겹겹이 쌓았다. 여몽전쟁이 끝나면서 강화조약에 따라 모두 성이 헐렸었다. 이를 조선시대 때 내성을 다시 쌓았지만 병자호란 때 청에 의해 다시 파괴됐고, 숙종 대에 다시 지었다. 현재 내성은 사대문이 모두 남아있고, 군데군데 성곽과 비밀통로인 암문 등이 남아있지만 중성과 외성은 흔적을 찾기 힘들 상태로 훼손됐다. 내성도 군데군데 복원되지 못한 성곽이 있고, 특히 동문~남문 사이는 강화 읍내를 거의 가로지르다 보니 성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 나들길 코스 역시 이 구간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코스의 출발점은 남문이다. 누각의 이름은 안파루로 1955년 무너진 것을 1975년 강화지역 국방유적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복원했다. 바깥쪽 편액에는 강화도의 도읍 시절 이름인 강도에서 따온 '강도남문'이, 안쪽 편액에는 안파루의 이름이 적혀 있다.


남문을 출발해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남장대가 나온다. 조선 시대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맡았던 곳이다. 원래 강화산성에는 남장대 외에도 북장대와 서장대까지 총 3개의 장대가 있었다. 하지만 장대들은 시간을 지나며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2010년 복원된 남장대만이 남아있다. 남장대에 오르면 감시시설답게 일대의 광경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읍은 물론 저 멀리 영종도까지 내다보일 정도다.


남장대를 떠나 국화저수지와 석수문을 지나면 서문에 다다른다. 강화읍 관청리와 국화리 경계에 있으며 이 역시 사라졌다가 2011년 누각인 첨화루와 양옆에 석성이 복원됐다. 근처에는 연무당 터도 있다. 강화도의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정작 1876년 일본이 조선을 압박해 강압적으로 맺은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가 체결된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지만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조약이다. 이 때문에 이를 잊지 않도록 기적비를 세워 민족 자주 의식을 간직해야 한다는 내용을 적어두었다.


서문을 떠나 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북문의 이름은 진송루다. 여몽전쟁이 끝난 후에 몽골의 요구로 헐린 후 조선 전기에 다시 쌓았지만 이내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됐다. 숙종 때 성을 보수하면서 남산까지 포함해 넓힌 바 있다. 북문을 떠나 복원 중인 북장대를 지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고려궁지가 나온다. 비록 개경의 궁궐보다는 작지만 있어야 할 전각들은 모두 갖춘 궁궐이었고, 조선 시대 들어서도 일부 건물은 행궁이나 관아 건물로도 쓰였다. 외규장각 등이 있었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대부분이 불에 탔다. 현재 영구 '대여'의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도 당시 프랑스가 약탈해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문인 망한루에 다다르면 오늘의 코스는 끝난다. 병인양요 시기 프랑스군이 이 문을 통해 강화성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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