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고립24시]'코로나 학번'이 위험하다...올해 빗발친 상담전화

최종수정 2024.05.06 10:21 기사입력 2024.05.06 06:30

<3>곁에서 바라본 고립·은둔 청년들
①고립·은둔 청년 ‘SOS' 해결사들
코로나가 촉발한 고립 고통 확대 목격
"팬데믹發 소통 어려움 겪는 청년 많아져"
"'게으르다' 시선에 청년들 숨어" 우려

편집자주퇴근 후 혼자 끼니를 때울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수백개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때, 아프거나 돈이 없는데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때... 아시아경제가 만난 20·30대 청년들은 이럴 때 고립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혹시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가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고립·은둔을 다시 제대로 바라볼 때입니다.

20·30대 청년의 고립·은둔 위기가 악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 이들은 바로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직접 지원하는 민간단체 관계자들이다. 위기 현장에서 청년들과 직접 소통하며 일종의 ‘해결사’로 활동해온 5명의 현장 종사자들은 아시아경제와 만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중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고립·은둔 청년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게으르다', '의지가 없다'는 사회적 시선 속에 계속 부딪혀 좌절하는 만큼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사회가 청년의 고립·은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지원 단체 현장 종사자들 "코로나發 위기, 시급하다"

"심각해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 대학 다닌 21~23살 청년들 상담 전화가 올해 급증했어요. 전화 받아보면 배운 것도 없고, 대학에 친구도 없고, 학회나 동아리는 하다가 중단했다고 하더라고요.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라고 한다. 불안하다. 내가 무슨 성인이냐, 준비기도 제대로 없었다'고 말합니다. 요즘 청년 고립 문제를 보며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팬데믹발(發) 급증'이에요."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이 팬데믹을 계기로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은 통계에서도 포착됐다. 통계청이 진행한 사회적 고립도 조사에 따르면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률이 전체 비율로 보면 10~30대가 40~60대에 비해 적지만, 증가 폭은 세 배 이상 컸다. 10~30대의 경우 지난해 이 질문에 대한 응답률이 지난해 47.9%로 2019년 대비 16.2%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40~60대는 59.3%에서 65.1%로 5.8%포인트 증가했다.




"(팬데믹 기간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였어요. 비대면으로 뭐라도 연결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했죠.(고립감을 느끼는 1인 가구 청년들이 많았냐는 질문에) 물리적 고립, 실업, 무급 휴직 같은 경제적 고립 문제가 컸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체감했어요.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위험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코로나19 기간 중 고립·은둔 청년들을 지켜본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소통 경험 부족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사회와 단절된 3년 동안 폭넓은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 청년들이 방안에 갇혀버렸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힘들어할수록 청년들이 고립·은둔 상태로 빠지는 악순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도움을 요청하려고 오는 청년들과 전화하거나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었어요. 확실히 좀 더 소통이 어려워졌어요. 가장 크게 느낀 지점은 말로 뭔가 전달했을 때 이해를 잘 못 하는 부분이었어요. 대화할 때 보통 텍스트로 전달되는 내용 외에 뉘앙스 같은 게 있는데 그걸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처음엔 우리 단체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단체랑 대화를 나눠보니 그분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19 사태가 이미 진행 중이던 20·30대의 고립·은둔 문제를 가시화한 것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비대면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으면서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되긴 했지만, 이미 그 전부터 시작됐어요.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겉으론 문제없이 지내는 듯 보이지만, 마음속 이야기는 잘 안 하는 문화가 됐어요. 진솔한 마음속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고 지지하는 문화 자체가 많이 줄었습니다."


고립·은둔 청년을 마주하는 지원 단체 종사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문제가 악화하는 현상이 청년뿐 아니라 청소년에게서도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기간인 2020년 학업 중단 학생은 3만2027명(초·중·고교생 대비 0.6%)이었으나 2022년 5만2981명(1.0%)으로 크게 늘었다.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한 단체의 관계자는 최근 대안학교 교사에게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무언가에 도전하려는 태도가 평균 1년 정도 어려졌다'는 얘길 들었다며 이들이 고립·은둔 청년으로 점차 진입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노인도 아닌데…" 힘들어도 말못하는 고립·은둔 청년들

상황이 이렇게 악화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자신의 고립 은둔 상태를 잘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인식하더라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 사람이 의지가 없다', '사지 멀쩡한 청년이 노력할 생각을 해라'. 취업도, 연애도, 인간관계도 어려워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은 커도 세상의 시선에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한다. 외로움이 커지고 사회적으로 고립·은둔 상태에 접어든다.



"노인은 고립되면 동정하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반면 고립 청년들을 향해서는 '왜 저러고 있어'라는 비판이 훨씬 많아요. 청년 본인도 스스로 취업을 못 하면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데 그 횟수가 잦아지면서 그러한 상태가 지속돼 벗어나기 어려워지죠. 이러한 상황에서 '나 사실 힘들어'라면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나 상태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고립·은둔 청년의 특징입니다."


실제 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한창 일할 나이에 이러고 있는 게 한심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이라는 표현을 섞어가며 말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만1000여명의 고립·은둔 청년 중 80% 이상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응답했다. 동시에 응답자의 67.2%는 실제 민간 기관에 적극적으로 사회 복귀를 위한 프로그램 참여 방법을 묻는 등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했다. 현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발버둥 치고 있다는 의미다.



"고립·은둔 청년을 보면 사실 뇌로 노동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경제활동을 하고 있진 않아도 많은 걱정을 하고 후회하면서 괴로운 생각들을 해가면서 머리를 계속 가동하고 있는 것이죠. 실질적으로 '과노동 상태', '번아웃'이라는 게 핵심이에요. 본인이 되게 멋진 사람이 돼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욕심도 더 많은 사람일 수 있어요. 의지나 욕심이 적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도 성공하고 잘 살고 싶은데 현실이 어렵다 보니 마음이 힘든 것이죠."



"(고립·은둔 청년을 보며) 본인이 선택해서 혹은 게으름이 몸에 뱄다고 해석하는 분이 있지만, 아닙니다. 이들도 경제적으로 자립해 자신을 건사하고 연애도 하고 싶어하는 나이죠. 사회로 나오려는 의지가 큽니다. 씨즈 상담 신청자 70%가 본인이에요. 본인의 문제를 직접 쓰고 문자로 연락하죠. 일본은 이러한 단체에 연락해 신청하는 사람을 보면 80~90%가 부모예요. (한국 상황을 본) 일본 기관 관계자들이 다들 놀랍니다."



"(고립·은둔 청년 본인이 자신도) 고립을 개인의 잘못으로 봐요. (저희 단체 지원받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요청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말하더라고요. 지원 단체를 알아도 '혼자 이겨내고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취약계층은 지원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못 해요. 분명 충분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고립 청년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외로움·사회적 고립 위험 정도를 확인하세요'

-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척도

https://www.asiae.co.kr/list/project/2024050314290051322A


'청년고립24시' 기사가 읽고 싶다면
<1>아시아경제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
① 나는 28세 고립청년입니다…"1인분 역할 못하는 존재"
② 취업이 만든 고립…온종일 한마디 안한채 보낸 하루
③ 육아보다 힘든 게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그렇게 우울증이 왔다
④ 3년간 햇반·라면 먹고 온종일 게임만…정서적 불안 심해지면 결국엔

<2>2024 고립 인식조사
① 10명 중 6명 "외롭다"…관계단절·박탈감 고통 호소
② "회사서 홀로 선 느낌"…직장인 2명 중 1명 "고립감 심해져"

<3>곁에서 바라본 고립·은둔 청년들
① 코로나 학번'이 위험하다...올해 빗발친 상담전화
② 고립의 끝에 남겨진 흔적들…"엄마·아빠 보고 싶다, 미안하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