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의대교수까지 줄사표 내게 한 '전공의 파워'의 배경

최종수정 2024.04.20 10:03 기사입력 2024.04.20 07:00

2000년 이후 전공의 '투쟁 선봉' 굳어져
저수가 의료체계 희생양 스스로 인식
건보 재정상 전공의 처우 정상화 어려워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동시 사직으로 촉발된 의료사태가 20일로 두 달이 됐다. 전공의는 이후 19일 증원 규모 절반 모집 허용까지 매일 쏟아진 정부의 강온 양면책에도 요지부동이고, 의대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내고 제자들의 뒤를 따라 초강경 전선에 가세했다. 전공의 주도의 의료공백 사태가 왜 걷잡을 수 없게 불붙는지 의료계 사정을 위주로 알아본다.




◆왜 전공의가 나섰나=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전공의가 주도한 이래 사반세기 동안 우리 의료계에서 전공의는 대정부 투쟁의 선봉이라는 공감대가 굳어졌다. 이후 2014년 원격의료, 2020년 공공의대 반대 집단행동 등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벌일 때마다 그해 의대생부터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까지 11년차가 동시에 '투쟁 경험'을 했는데, 그때마다 의대생들에게 '내가 나중에 전공의가 됐을 때 대정부 투쟁이 필요하면 당연히 주도해야 한다'는 집단적 사고가 형성됐다고 의료계 관계자는 전했다. 현재 집단 휴학 신청을 한 의대생들이 이런 경험을 물려받는 중이다. 이와 같은 행태가 단절되지 않으면 전공의가 주동하는 의료계 집단행동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 이탈이 병원을 세운 원인= 병원은 모든 직역이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작동하지 않으면 병원 전체가 멈춘다. 나사 하나만 빠져도 로켓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 교수 한 명의 수술은 전공의 두 명이 보조를 서야 가능하다. 전공의가 병동 입원 환자를 챙겨야 교수가 수술방에 들어가거나 의대 수업을 하러 가거나, 퇴근할 수 있다. 단순히 저임금으로 착취하던 전공의가 없어져서 대학병원이 적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진료를 통해 병원 매출을 창출하게 백업하는 '업무지원 핵심 담당자'가 사라진 것이다. 전공의 이탈 후 교수가 밤샘 당직을 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공의가 '당당한' 이유= 전공의는 1977년 건강보험 도입시부터 적자 편성인 의료수가체계에서 자신들이 대대로 떠맡는 '4년간의 저임금 중노동'이 의료전달체계 유지를 위한 필수적 희생이라고 자부한다. 현재 의대 교수와 전문의들도 전원 전공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런 자부심에 공감한다. 전공의들이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교체를 복귀 조건으로 내건 것도 "박 차관의 몇몇 발언이 국민 보건을 위해 희생하는 전공의와 의료계를 무시했다"는 감정적 이유다. 의료계 외부에서 "의사들이 환자의 피해를 담보로 희생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비판하는 지점이다. 전공의가 '우리는 집단행동 해도 돼'라고 여기게 만드는 이런 인식은 수가체계를 흑자 재편성하지 않으면 바뀔 가능성이 없다.


전공의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정책피해 전공의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 집단고소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의료계가 단일대오인 까닭= 우리 의료기관은 모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정한 비용을 받도록 종속돼 있다. 소속 의료기관이나 각자의 진료 수준차와 무관하게 어느 의사든 같은 진료를 하면 같은 금액을 받는다. 사실상 '한 회사에서 같은 월급을 받는 직원'인 셈이다. 의사는 평소에는 전공과목이나 소속 의료기관의 등급(1차, 2차, 3차 의료기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고 서로 대립도 하지만, 의대 증원이나 4대 필수의료 패키지 등 의료체계 전체를 흔드는 정책이 나오면 마치 '같은 회사 노조원'처럼 일제히 반발한다.


전공의 설득 왜 안되나= 2000년 이후 의료계가 집단행동한 의정갈등 4건은 두 가지로 성격이 나뉜다. 2014년 원격의료와 2020년 공공의대 추진은 의사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이 덜한 '제3의 정책 이슈'였다. 원격의료는 통신 3사의 이익을 위해 '의사는 환자를 직접 진료한다'는 원칙을 깨는 정책이라고 의료계는 간주했다. 공공의대는 시민단체 추천으로 의대생을 선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라고 의료계는 봤다. 둘 다 정부가 해당 정책을 철회하자 전공의는 돌아왔다. 반면, 의약분업은 의사들의 수입을 줄이는 정책이었고, 의료계는 수가 인상과 의대 정원 감축이라는 보전책을 약속받고 파업을 끝냈다. 이번 의대 증원도 수입을 건드리는 정책이다. 그러나 정부가 매일 내놓은 필수의료 지원책은 수입 보전책이 아니어서 전공의를 움직이지 못한다.


해결 전망 어두운 까닭= 의대 증원이라는 수면 위 갈등 아래에 현행 건강보험 제도 유지가 어렵다는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저부담', '저수가', '저보장' 3저 원칙을 기본으로 건보를 도입했다. 의료계가 이를 수용한 것은 당시 건보 가입자가 국민의 5%에 불과했고, 정부가 수가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1989년 수가 정상화 없이 건강보험을 전국민으로 확대했다. 의료계는 건보 진료만으로는 적자를 면할 수 없게 됐다. 의료계는 비급여 진료로 적자를 메꾸고 전공의에 의존하면서 저수가 체제에 적응했다. 현재 이탈한 전공의들이 요구하는 좋은 처우 및 수련환경 확보는 수가가 인상돼 수련병원이 진료 수입만으로 흑자를 볼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건보 재정은 문재인 케어의 여파 등으로 2028년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이 같은 '정공법 해결'은 어렵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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