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민의힘 위기의 진짜 본질

최종수정 2024.04.19 07:30 기사입력 2024.04.19 07:30

제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바르게 보아야 한다. 정견(正見. 바르게 보는 것)에서 정업(正業. 바른 행동)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총선 참패는 여기서부터 실패했다. 상황을 똑바로 보지 못했기에 이어지는 대응책들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도가 문제일 뿐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바르게 보는 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판의 변화다.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이 큰 틀에서 변했다. 사실 이건 최근 일이 아니다. 10년쯤 전부터 시작됐다. 정치 성향을 진보와 보수로 나눈다면 이즈음부터 진보 성향 유권자가 뚜렷하게 다수를 차지했다. 과거 보수가 우위를 점했거나 비슷비슷했던 것에 견줘보면 근본적인 변화다. 정당을 선택하는 비례대표 투표를 기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찾아봤다. 2012년 19대 총선 때 보수(새누리당, 자유선진당)는 46.03%, 진보(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는 46.75%를 얻었다. 별 차이가 없었다. 이른바 '진박 논란'으로 새누리당이 패배한 2016년 20대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새누리당)는 33.50%, 진보(더불어민주당, 정의당)는 32.77%를 얻었다. 역시 거기가 거기였다.


그런데 '박근혜 탄핵' 이후 치러진 2020년 21대 총선 때부터 확 달라졌다. 보수(미래한국당, 우리공화당 등)는 41.54%를 득표했지만, 진보(더불어시민당, 정의당, 열린민주당 등)는 52.2%를 득표했다. 10.66%p 차이가 났다. 이번 총선에서는 더 벌어졌다. 진보(더불어민주연합, 녹색정의당, 조국혁신당, 새로운미래)는 54.78%를 얻었다. 반면 보수(국민의미래, 개혁신당, 자유통일당)는 42.54%를 득표했다. 차이가 12.24%p다. 21대 총선 때와 비교해 1.58%p 늘었다. '진보 우위' 구도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수는 확실한 '소수파'다.


게다가 인구 구조의 변화는 보수에게 유리하지 않다. 60대 이상은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말은 옛말이다.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386세대'의 앞줄은 이미 6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보수 성향이 강한 고령층은 인구 자체가 줄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구 소멸, 지역 감소로 지방 선거구는 줄고, 도시 선거구는 늘고 있다. 국민의힘의 위기는 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밀려오고 중첩돼 있다. 이 때문에 중도 나아가 온건 진보까지 포괄할 정도로 지지기반을 넓혀야 함에도 오히려 반대로 갔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대응은 한가롭기만 하다. 지난 총선에 이어 '양남당(강남·영남 중심 당)'이 됐다. 이미 4년 전 유권자들이 강하게 경고했음에도 달라진 게 없다. 이러고도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고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싸움꾼, 공격수, 기능인 등 실무형은 많으나 유승민 전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보수의 철학을 말하는 이가 없다. 가치와 철학이 사라지고 전략적인 두뇌가 없으며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니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로 가려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당위만이 존재한다. 토대가 무너져가는데 선거할 때만 되면 당 밖의 인기인을 영입해 모면하려고 한다. 속이 점점 멍들어간다. 이것이 국민의힘의 현주소다.



소종섭 정치사회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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