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25전쟁 영웅’ 최종성 공군 중위

최종수정 2023.01.31 08:58 기사입력 2023.01.31 08:58

‘2월 독립운동가’에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 선정


[아시아경제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최종성 공군 중위(사진)가, ‘2월의 독립운동가’에는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이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처는 6·25전쟁에서 적 보급로 등 후방 차단 작전에 전공을 세운 최종성 공군 중위를 ‘2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 중위는 1931년 12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1951년 6월 공군 조종 간부후보생 제1기로 입대해 1952년 8월 교육을 마쳐 소위로 임관하고 공군 제10전투비행전대 소속 F-51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했다. 그해 9월 23일 경기 가평 현리와 강원 회양에 있는 적 보급품 집적소를 파괴하는 작전에 처음 출격했으며 10월에는 16·20·25·27·30일에 하루 2회씩 출격해 강원 고성·원산 등지에서 적 주요 보급로를 차단하고 각종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최 중위는 이런 공적으로 1952년 10월 24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11월 2일, 후방 차단 작전 임무 수행을 위해 강원 원산 남쪽 안변 지역으로 출격했다가 지상에 대량 배치된 적 대공화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정부는 전공을 기리어 소위에서 중위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고 유해는 1958년 11월 15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2월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윤동주 시인 사촌 형인 송몽규 선생은 1917년 중국 용정 출생으로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백범 김구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시킬 청년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립했던 학생훈련소에 입소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과 일본어 상용 정책에도 불구하고 항일운동의 방법으로 한글 시를 문우에 수록했다.


선생은 일제의 조선어문 소멸 유도 등 민족말살정책을 비판하고, 세계의 동정을 얻어 조국 독립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등의 이유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돼 1945년 3월 28세 나이로 옥중 순국했다.


안창남 선생은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비행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1920년 8월 오구리(小栗)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1921년 3월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8월 조선인 최초로 3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다. 선생의 최초 국내 비행은 조선 청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울림을 줬다.


1926년 여운형의 도움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고 있던 산시성 군벌 염석산 군(軍)의 항공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1928년 신덕영 등과 함께 대한독립공명단을 조직, 군자금을 모집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조선인 군대를 양성해 국내 진공 작전을 구상했다. 선생은 최양옥 등을 국내로 파견해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지휘하고 중국에서 조선인 비행사들이 항공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1930년 4월 산서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 중 기체 고장으로 인해 29세에 산화했다.


김필순 선생은 1878년 황해도 출생이다. 1886년 배재학당에 입학했고 1899년 제중원에 들어가 올리버 알 애비슨의 통역 및 조수로서 제중원 교재로 사용되는 서양 의학서적을 번역할 만큼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선생은 1908년 세브란스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았으며, 모교와 간호원 양성소의 교수로 활동하며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선생은 1916년 8월 일제의 감시와 간섭이 날로 심해지자 통화현을 떠나 내몽고 치치하얼로 이주, 치치하얼에서 북제진료소를 개원하고 의료활동에 종사하면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애쓰던 중 1919년 9월 순국했다.


송몽규·안창남·김필순 선생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각 문학·군사·의학 분야에서 헌신하고 순국한 독립유공자라고 보훈처는 밝혔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송몽규 선생에게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안창남 선생에게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 김필순 선생에게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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