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6ㆍ25 전쟁영웅은 알몬드 중장

최종수정 2020.08.31 09:17 기사입력 2020.08.31 09:17



[아시아경제 양낙규 군사전문기자]9월의 6ㆍ25전쟁영웅에 에드워드 알몬드 미국 육군 중장이, '독립운동가'에는 채원개 선생이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처는 인천상륙작전 때 상륙군을 지휘하고 흥남철수작전을 주도한 에드워드 알몬드(1892.12.12∼1979.6.11ㆍ사진) 미국 육군 중장을 '9월의 6ㆍ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미국 버지니아주 루레이에서 태어난 알몬드 중장은 1915년 버지니아 군사학교를졸업하고 육군 보병 장교로 임관해 제 1ㆍ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다. 6ㆍ25전쟁 당시 미 제10군단장이었던 알몬드 중장은 인천상륙작전과 원산상륙작전에서 상륙군을 지휘해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까지 진격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악화하자 알몬드 중장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철수 작전을 수행했다.


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14일부터 12월 24일까지 국군 1군단과 미군 10군단장병 10만5000여명, 피란민 10만여명을 이남 지역으로 철수시킨 인도주의 작전이다.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으로 국군 1군단과 미군 10군단은 전투력을 보존했고, 1951년 1월부터 시작된 유엔군의 재반격 작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9월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채원개(1895.3~1974.2) 선생은 평안남도 영원에서 태어난 선생은 개신교 계열의 의명소학교를 졸업하고, 21살에 조선보병대에 입대해 평생 군인의 삶을 시작했다.


1920년 대한독립단 통임관구 지대장을 맡아 독립군 세력을 대대적으로 토벌하는일본군과 전투를 하다가 관통상을 당했다. 이듬해 통의부 대표로 상하이에 파견되어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한 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에 참여했다. 1923년 6월 낙양군관학교 기병과에 입학해 체계적인 군사학을 배웠고, 중국 군벌의 내전에도 참여해 본격적인 실전 경험을 쌓았다. 1925년 임시정부 육군 참의부 군무부장에 임명되어 정의부와 참의부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만주로 건너가 지도자들을 만나 갈등을 봉합하고 중재했다.


1927년 황포군관학교 교관을 맡아 제대로 된 군사양성 기관이 없이 무장투쟁하던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했다. 1934년 광둥 주재 중국군에 복무하면서도 한국독립당 광둥지부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다. 중국 광저우 동산백원을 임시정부의 임시청사로 제공하고, 아세아 여관을 임시정부 요인 및 가족들의 숙소로 활용하는 데 기여하는 등 임시정부를 측면에서 지원했다.


1940년 광복군에 합류해 참모처장, 1943년 총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후방에서 지원 활동을 펼쳤다. 1944년 광복군 제1지대장을 맡는 등 전면에 나서 광복군을 지휘했다.


광복 후 광복군 제1지대를 이끌고 귀국하려 했으나, 미 군정이 광복군의 입국을거절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만을 허락해 부대를 해체하고 부하들을 먼저 귀국시킨 뒤 이듬해 돌아왔다. 귀국 후 육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마친 뒤 제3연대 작전참모로 부임한 이후 제3여단장, 제2사단장을 역임했고 1949년 준장으로 예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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