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380여종 화약 탄약 이곳에서 태어난다

최종수정 2020.02.26 09:12 기사입력 2017.07.10 08:16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던 1942년. 일본군은 눈에 띄지 않고 태평양을 향해 곧장 전투기를 출동시킬 수 있는 비행장이 필요했다. 일본군 눈에 들어온 곳은 바로 전라남도 여수시다.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군은 여수 비행장을 떠났고 우리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여순 반란사건을 일으키면서 굴곡의 역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현재 ㈜한화 여수공장이 자리 잡았다. 민족 현대사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곳은 현재 한국군 탄약의 제조창이다. 탄 제조기술이 집약된 현장을 보기 위해 지난 13일 여수공장을 찾았다.


공장 내 경비는 삼엄했다. 핸드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 촬영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신고하지 않은 노트북도 모두 반입이 금지됐다. 하지만 공장에 막상 들어서자 휴양림처럼 우거진 나무들이 기자를 반겼다. 회사 전망대에 올라가니 360m높이의 구봉산을 등지고 여수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일본군이 이곳을 비행장으로 탐을 낼만한 요새임을 짐작케 했다.


회사 관계자는 "62만평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앞바다에서는 어민들이 양식어업을 하고 있다"면서 "그만큼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6.2km에 달하는 공장 외곽은 이중철책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공장을 돌다보니 일본군이 사용하던 비행기 격납고와 탄약고도 눈에 들어왔다. 공장 중간에 위치한 소진탄피 조립동에 들어가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공장직원들이 보였다.


2층에 올라가자 한 직원은 우윳빛 액체에서 하얀색 모양의 통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바로 연소성 소진탄피의 첫 모형체였다. 모든 탄은 발사하는 힘을 갖기 위해 추진제를 사용한다. ㈜한화는 1999년 이전만 해도 헝겊에 추진제를 담아 제조했다. 수분에 노출될 경우 탄은 오래 사용하지 못한다. 불발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목화솜과 질산, 종이재질 등으로 만든 소진탄피는 추진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탄피자체가 화약인 셈이어서 탄을 발사한 이후에도 잔료가 남지 않는 장점이 있다.





우윳빛 액체에서올라온 소진탄피는 바로 열 압축기로 향했다. 종이처럼 흐물거리던 소진탄피는 130도의 고온에서 3분간 구우니 딱딱한 플라스틱처럼 변했다. 마치 진흙 덩어리가 가마솥에서 구워진 후 딱딱한 옹기로 변하는 듯했다. 이 탄피는 바로 코팅작업에 들어갔다. 알류미늄페인트로 코팅을 하고 나니 비로소 탄피의 모양이 나왔다.


다른 공장동으로 자리를 옮기니 코팅을 마친 소진탄피들이 공장라인에서 일렬로 이동 중이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빈 통조림이 쌓여있는 듯했다. 쉴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라인에는 직원이 2명밖에 없었다.


김기영 팀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탄피 안에 점화제를 넣고 추진제를 넣는 일이 모두 자동화가 됐다"면서 "직원 수가 줄었지만 오히려 생산량은 늘고 불량률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소진 탄피 안에 접착제를 붙인 점화제를 삽입하고 추진제를 넣는 일을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인시스템 덕분에 탄마다 로트번호를 새기는 과정까지 자동화로 진행됐다. 로트번호까지 적힌 소진탄피는 옆 공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자동화 시스템은 이어졌다.


자동화 시스템은 소진탄피 안에 손가락 크기의 연탄처럼 생긴 추진제를 담고 무게까지 측정했다. 생산라인 중간 지점을 가니 소진탄피가 하나 지나갈 때마다 추진제의 무게, 소진탄피의 무게가 실시간으로 체크됐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K-9 자주포용 추진 장약은 사거리에 따라 다른 추진제를 사용한다.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좀 더 굵고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추진제를 사용한다.


공장 관계자는 "여수공장에서만 380여종의 신관용 화약, 고폭약, 추진제를 생산한다"면서 "다양한 탄이 생산되는 만큼 보이지 않는 기술력은 날마다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장을 빠져 나오니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던 여수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이 자리에 우리 군의 탄약 제조창이 대신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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