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의 Defence Club]“국가가 부르면 달려간다”… 예비군이 변했다

최종수정 2023.05.09 07:22 기사입력 2023.05.09 07:15

상벌제 이후 달라진 분위기의 예비군 훈련장
마일즈 장비 착용 후 실전처럼 훈련

1968년 1월 ‘청와대 습격 사건’과 미국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예비군을 창설했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건설하는 향토방위 태세를 갖추기 위해 재향군인의 무장이 필요하다"라는 취지였다. 예비군 창설일은 매년 4월 1일이었지만 ‘만우절’과 겹쳐 2007년부터 매년 4월 첫째 주 금요일로 변경했다. 지난달 6일 예비군의 날 55주년을 맞아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육군 31사단 예비군 훈련장을 찾았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쏟아졌다. 예비군 훈련장 정문에는 머리가 긴 예비군들이 입소를 위해 줄을 섰다. 동미참(동원훈련 미참가자가 별도로 받는 훈련) 훈련 4일째 일정을 위해 부슬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서정연했다. 의외였다. 20년 전 기자가 받았던 예비군 훈련장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헬멧, M16 소총 등 개인장비를 지급받은 275명의 예비군은 강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훈련에 앞서 영상교육이 시작됐다. 영상교육에는 핵무기에 대비한 영상도 포함됐다. 올해 처음 도입된 교육이다.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비군들도 진지했다.


최혜선 대대장(중령)은 “과거와 달리 훈련에 충실한 예비군 30%는 정시 퇴소(오후 6시)보다 2시간가량 먼저 퇴소할 수 있다”면서 “상벌이 확실해지면서 예비군들이 자세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핵무기 대비한 교육 영상 올해부터 도입… 마일즈 장비에 실전훈련도 가능

영상을 보는 예비군들은 하나같이 정면을 주시했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예비군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교육 시간 핸드폰을 사용할 경우 경고를 하는데 2번 경고를 받을 경우 퇴소 처리되며 다시 훈련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비군들은 스스로 자제했다.


영상에는 핵 공격을 받기 전, 핵 공격을 받는 상황, 핵 공격이 끝난 후 대처상황을 묘사했다. 생화학공격에 대한 대비도 알려줬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드론 수백 대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성능 폭발물이나 생화학 무기 등을 운반할 수 있는 만큼 심각한 위협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예비군들은 제한 시간 내에 K5 방독면과 화생방 보호의를 착용하고, 신경작용제 해독 키트(KMARK1)·개인제독 키트(KD1) 사용법을 반복적으로 실습했다.


강의실을 나온 예비군들은 분대(10명) 단위로 나뉘어 진지를 구축하고 클레이모어(대인지뢰 폭탄) 설치했다. 또 분대장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작전까지 지휘했다. 일명 워게임이다. 이날 시나리오는 적 2~3명이 월봉산에 침투해 담양댐을 타격하고 접근하는 상황을 부여했다. 훈련에 참여한 예비군들은 전시상황에 광주시 서구와 남구를 사수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광주시민이다. 지도를 펼치자 모두 지리엔 익숙한 듯했다. 분대장은 적의 침투로를 예측하고 분대원들에게 산속에 방울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제안을 거절하거나 거부하는 예비군은 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진지구축을 마친 예비군들은 시가전을 위해 교장으로 이동했다. 예비군들은 교전장에서 2019년부터 도입한 마일즈 장비를 지급받았다. 마일즈 장비는 소총 끝에 레이저를 장착하고 공포탄을 쏠 때마다 레이저가 적에게 발사되는 장치다. 장병들은 센서가 장착된 헬멧과 조끼를 입는데 레이저를 맞으면 ‘사망’, ‘중상’, ‘경상’을 알려준다. 현역들과 달리 공포탄은 없앴다. 예비군 훈련장 주변의 소음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150m 길이의 교장안에는 광주 시내에 있을법한 건물들이 빼곡했다. 교전이 시작되자 예비군들은 돌변했다. 서로 다른 부대 마크를 단 분대원이었지만 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건물에 들어가 적과 교전을 시작했다. 교전 3분 만에 교장 한가운데 서 있는 전광판에는 ‘4번→ 35번 사살’이라는 글자가 표시됐다. 4번 예비군이 35번 예비군을 사살했다는 의미다. 여기저기에서 총소리가 요란하더니 전광판에는 연이어 사살이라는 글자가 나왔고 건물에서 예비군이 하나둘씩 손을 들고나왔다. 헬멧과 가슴에 부착한 센서엔 불이 들어왔다. 총에 맞았다는 뜻이다.


광주 서구에 거주하는 임채성씨는 “지난해 12월 제대해 처음 예비군 훈련을 받아본다”며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훈련이 부담이었지만 매일 다른 훈련을 통해 얻는 지식과 3명의 자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을 마치고 한 교관은 예비군들에게 “K-예비군들을 믿고 전시상황에 작전에 임하겠다”고 격려했다. 예비군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었다. 부대 강의실 안에 쓰인 ‘우리는 준비됐다.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라는 글귀가 진심 되게 들렸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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