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9.9절 열병식의 ‘숨겨진 코드’

최종수정 2022.09.26 15:17 기사입력 2021.09.13 10:26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코로나19 상황에서 북한의 행보가 기이하다. 7차 당대회에서 5년마다 당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서둘러 2021년 1월 8차 당대회를 개최했다. 더욱이 코로나19는 대북 제제에 이어 북한 경제를 최악의 상황으로 후퇴시켰지만, 북한은 정주년에 해당되는 기념일도 없는 상황에서 2021년 열병식을 2차례나 개최했다. 8차 당대회를 기념한 열병식도 그렇고, 9.9절 열병식도 그렇고 올해 2차례 열병식은 기존 것과 다른 특징을 보였다.


우선 1월 열병식은 이전에 없던 당대회 기념 열병식이었다. 그리고 김정은 체제 하에서 개최된 11차례 열병식 중 이번 9.9절 열병식은 기존의 정주년을 계기로 개최된 2013년(65주년), 2018년(70주년)과도 차이가 있다. 73주년인 2021년은 딱히 기념할 만한 일도 없다. 2013년은 핵무력 병진 선언이 발표되고 전승절 60주년이 있던 해였고, 2018년은 건군 70주년 및 정권수립 70주년이자 새로운 전략적 결단을 내리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처음으로 국제 외교 무대에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2021년은 모든 경제 지표가 최악인 상황에서 2차례의 열병식을 개최한 것이다.


김 총비서가 후계자로 공식 지명됐던 2009년 열병식과 이후 개최된 11차례의 열병식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의문점이 풀린다. 첫째 김 총비서가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열병식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65돌이었다. 김정일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열병식은 2011년 정권수립 63주년 9.9절이었다. 따라서 73주년 9.9절 열병식은 김정은 집권 측면에서 볼 때 정주년이 되는 10년이 되는 해인 것이다. 특히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상징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열병식은 정치적 차원의 의미가 크다.


둘째 63주년 9.9절 열병식과 65주년 9.9절 열병식에선 노농 적위군만 참여했다. 2018년 70주년 9.9절은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모두 참여했지만, 이전 9.9절 열병식과 같이 전략무기는 등장시키지 않았다. 이번 73주년 9.9절도 이러한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규군은 참석하지 않았고, 평양시 당원 사단, 각 도 노농적위군. 경제와 과학교육 부문 노농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등 민간 및 사회안전성 소속 사회안전 군과 사회안전 군 특별기동대만 참석했다. 전략무기 등장도 없었고 이전 9.9절에서 그러했듯 김 총비서의 연설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김일성 집권 시기에는 열병식이 당 중앙위와 당 중앙군사위 공동결정 형식으로 개최됐고 이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령으로 개최됐으나,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당 중앙위 정치국회의에서 개최가 결정되는 등 의사결정 방식이 변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열병식 개최 배경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11차례의 열병식 중 2018년 2월 건군절 열병식을 제외하고는 태양절 기념 2회, 전승절 기념 2회, 정권수립일 기념 3회, 당창건 기념 2회, 당대회 개최 기념 1회로 체제 내부 결속과 대외 군사력 과시 등 대내외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성격이 컸다. 그런데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을 정점으로 북한은 열병식을 군사적 능력 과시보다는 체제 내부 결속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1년 2차례 열병식은 결국 군민일치를 통한 국가수호와 이에 기초한 충성심 독려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 10년 성과라고 내세운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9.9절 열병식에 장식한 ‘이민위천’과 ‘부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이민위천’과 ‘부강’은 문을 닫은 채 자력갱생을 외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의 장에 나와서 개혁개방 조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가능해진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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