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국제 방산 협력

최종수정 2021.03.13 11:00 기사입력 2021.03.13 11:00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국제 방산 협력


[김호성 육군3사관학교 경영학과 교수]한국의 차기 전투기(KF-X) 개발사업은 40년 이상된 공군의 구식 전투기를 최신형 국산 전투기로 교체하기 위한 사업이다. 총 사업비는 8조8304억원으로, KF-X 개발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개발 사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투입되는 개발비가 너무 큰 탓에 과거 한국 정부는 비용의 분산을 목적으로 인도네시아와 국제 협력 개발 방식을 택하였다. 당시 인도네시아도 자국의 낙후된 전투기 교체 소요가 있었던 관계로 한국 정부와 이해관계가 잘 맞았으며, 총사업비의 20%인 1조7338억원을 분담하기로 합의하였다. 나머지 80%는 우리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부담하는 것으로 하였다.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부담 금액의 납부를 지체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전체 부담 금액의 13%에 해당하는 2,272억원만을 납부한 상태이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KF-X 개발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원래 국제 방산 협력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우리보다 경험이 앞선 유럽의 항공기 개발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생각해 보자.


유럽의 항공분야 최초의 국제 협력은 1950년대 프랑스 브레게(Br?guet) 1150 아틀란틱(Atlantic) 해양 순찰기 개발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격적인 유럽에서의 국제 협력은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콩코드(Concorde) 초음속 여객기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민간 항공기 개발사업이었지만, 1962년 프랑스의 수드 항공(Sud Aviation)과 영국의 BAC(British Aircraft Corporation) 간의 상업적 계약이 아닌 정부 간 국제 조약이 사용된 점에서 방산 협력과 매우 흡사한 형태였다. 콩코드의 디자인은 수드 항공과 BAC, 개발과 생산은 프랑스의 스네크마(Snecma), 엔진은 영국의 브리스톨 시들리(Bristol Siddeley)에서 제작하기로 임무를 분담하였다.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 했지만, 1962년 11월 영국과 프랑스 간 조약체결 이후 1964년에는 영국이 이 프로젝트에서 철수하려고 했던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주요이유는 비용 상승, 사업 지연 등의 사업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1969년 3월 첫 비행, 1976년 1월 상용화 개시, 2003년 10월 서비스 철수까지 지속적인 문제들이 유발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업은 무사히 마무리는 되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다른 언어와 문화에 있는 국가와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해 준 국제 대형 사업이었다.


유럽의 대표 전투기인 유로파이터 타이푼(Eurofighter Typhoon) 개발사업은 이탈리아 알레니아(Alenia), 영국의 BAe, 스페인의 CASA 및 독일의 DASA가 참여하였다. 이 사업 역시 국제 협력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최초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1986년 유로파이터 회사 설립부터 2003년 첫 전력화까지 대략 17년이 소요된 초장기 프로젝트였다.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전략적 환경과 더불어 참여 국가의 예산 문제, 기술적 제한 등도 문제였지만, 가장 핵심적 사업이 지연된 원인은 사업에 참여한 4개국 간의 의사소통 문제였다. 이 사례가 글로벌 방산 협력에 주고 있는 핵심적인 교훈은 참여하는 국가가 많을수록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최초 참여 국가들의 수요는 765대 였지만, 나중에 620대로 수요가 축소된 후, 또 다시 472대로 추가 축소되었다. 2018년까지 사업 참여 국가들의 주문 472대와 수출 151대를 합쳐서 총 623대의 항공기가 제작되었다. 이 성적표는 최초 계획했던 생산 수량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충분한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여 국가가 많을수록 복잡한 문제들을 발생시켰던 사업은 유로파이터 타이푼만은 아니었다. 에어버스(Airbus) A400M 아틀라스(Atlas) 개발사업에는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였고, 문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사례이다. 최초에 이 사업은 1991년 프랑스의 아에로스파시알(Aerospatiale), 이탈리아의 알레니아, 영국의 BAe, 스페인의 CASA 및 독일의 DASA로 구성되어 설립된 EFLA(European Future Large Aircraft) 그룹이 이끌었다.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벨기에, 터키도 본 사업에 합류했다. 사업 중간에 이탈리아가 철수하였고, 독일과 영국의 주문 감소, 계획대비 비용 초과 문제, 주요 기술 문제, 에어버스의 내부 구조조정, 사업 지연 등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2008년 예정된 첫 비행이 2009년 12월로 지연되었고, 계획된 첫 인도가 2009년에서 2013년으로 연기되었다. 2009년 시험비행 중 항공기 손실로 사업 취소까지 검토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위의 예와는 반대로, 국제 협력에서 성공하는 경우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재규어(Jaguar) 전투기와 파나비아 토네이도(Panavia Tornado) 전투기 개발사업이다. 재규어 전투기 개발사업은 1965년 영국과 프랑스가 초음속 전투기와 훈련기의 두 가지 유형의 항공기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기체의 개발 및 생산을 위해 영국의 BAC와 프랑스의 브레게(Breguet)가 참여를 하였다. 엔진 개발을 위해 영국의 롤스로이스(Rolls-Royce)와 프랑스의 터보메카(Turbomeca) 간에 별도의 산업 파트너쉽도 있었다. 이 사업은 운이 좋게도 사업진행 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최초에 치중했던 훈련기보다는 공격기가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 이후 상당한 수출 성과를 올리면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이룬 좋은 사례이다. 그리고 파나비아 토네이도 전투기 개발사업도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린 좋은 사례이다. 이 사업은 1969년 3월에 독일, 이탈리아, 영국이 전천후 다기능 전투기의 설계, 개발 및 생산을 위해 시작되었다. 1980년 7월에 첫 전력화가 되었으며, 사우디로 120대 수출을 포함하여 약 1000대의 항공기가 제작되어 지금도 운용 중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모델이었다.


역사 속에서 대규모 방산 협력은 많은 선례를 남겼다. 유럽의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해상 및 육상 무기체계보다 상대적으로 우주항공 분야에서 많이 나타났다. 그 이유는 자국의 기술 수준, 사업의 복잡성,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한 위험의 분산과 규모의 경제 실현이 주요 키워드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국제 방산 협력 사례들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KF-X 개발사업에 있어 인도네시아와의 협력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어쩌면 국가 간 대규모 협력 프로젝트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국제적 협력 경험이 부족한 대한민국 방산에 있어 이 또한 값진 경험의 축적일 것이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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