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지배하라-(1)항공기 조명탄 어떻게 개발됐나

최종수정 2022.09.26 15:48 기사입력 2020.06.20 16:00



[이준웅 국방과학연구소 전 책임연구원]군사작전에는 다양한 조명탄들이 사용되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시 세계적인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티오콜(Thiokol)사가 개발한 LUU-2라는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이다. 이 조명탄은 야간에 헬리콥터 같은 항공기에서 투하하면 낙하산을 타고 약 5분 간 서서히 내려오면서 지상 50m 반경을 대낮 같이(15럭스) 밝힌다. 1980년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은 이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의 역설계를 시도했다.


▲어렵사리 이뤄낸 조명제 충전, 그리고 연소시험 실패=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은 낙하산, 점화장치, 점화장치와 조명제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조명탄의 사출장치, 낙하산 전개장치, 점화장치, 조명제 등의 주요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기술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조명제를 안전한 방법으로 알루미늄 통 안에 충전하는 프로세스를 몰랐다. 조명제가 제대로 충전되어야만 180만 촉광의 빛을 발하면서 5분 이상 연소할 수 있다.


개발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조명제 충전 방법 개발이었다. Thiokol 사는 탬핑머신(Tamping Machine)을 사용했는데,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즉, 알루미늄 통에 조명제를 공급하면서 다짐봉으로 두드리면, 통 안에서 조명제의 밀도가 높아지다가 일정한 값이 되면 다짐봉이 자동으로 위로 미끄러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장치의 핵심은 다짐봉을 붙잡는 장치(클러치)에 가죽을 부착해 다짐봉에 걸리는 압력이 높아지면 미끄러지는 원리이다. Thiokol의 설계대로 제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특히 작업을 반복하면 클러치와 가죽의 마찰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장비를 자주 해체해서 가죽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이었다. 이에 고안한 방법은 다짐봉을 미끄러트리는 Thiokol 사의 방법 대신 다짐봉을 클러치에 견고하게 고정시키고, 조명통 하부에 오일탱크와 유압조절밸브를 연결해 다짐봉에 일정한 압력이 가해질 때마다 오일이 조금씩 새어나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위 설계를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드디어 정확한 밀도로 조명제를 충전하는데 성공했다. 조명제 충전장치 발명 후 이를 이용한 조명제 충전에 몰두했다. 이렇게 충전된 조명이 180만 촉광의 빛을 5분 이상 발현하면서 연소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소시험을 시작했다. 보름달을 피해 밤늦은 시간에 구급차와 소방차를 대기시키고 점화신호를 보냈고, 조명탄은 찬란한 빛을 발하며 연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고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조명탄은 약 4분간 연소한 뒤 꺼졌고, 약 10cm 정도 길이의 타다 남은 조명제가 땅바닥으로 떨어지졌다. 5분 이상 연소하지 못하면 프로젝트는 실패였기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 단순한 문장 한 줄에서 찾은 해결책= 조명탄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읽은 결과 '조명통 내부에 단열제로 부착하는 석면판은 가능한 좁은 넓이로 접착 시킨다'라는 단순한 문장이 해결책의 시작점이 됐다. 해결 전 연구진은 석면판 전체를 알루미늄 통 내부에 견고하게 접착시켜 조명제를 충전했다. 이와 반대로 알루미늄 통 내부와 석면판을 접착시키지 않으면 석면과 알루미늄 통 사이에 공기층이 단열효과를 증진시키고 그로 인해 알루미늄이 조기 연소하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전의 조명탄은 조명제가 연소하면서 발생한 열이 알루미늄으로 직접 전달되어 알루미늄이 점화됐다. 그래서 알루미늄은 조명제보다 빠르게 연소하여 4분이 지나면 모두 연소되어 없어졌고, 남은 조명제만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연구진은 새롭게 알아낸 방법대로 조명통 안을 석면으로 접착한 조명탄을 완성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골라 실험을 실시했다. 점화신호를 보낸 후 조명탄은 맨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밝은 빛을 비추면서 타들어갔고 마의 장벽이었던 4분을 지나 5분 10초를 넘겨 연소됐다. 모두가 환의에 벅차있을 때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실험을 참관하던 연구원 한 명이 소방차가 철수할 때 뒤에 늘어진 로프에 말려 수십여 미터를 딸려갔고, 연구원은 3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 또 다른 반전= 그 이후 반복적인 실험으로 조명탄의 성능이 완전히 입증됐다. 기술적인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 낙하산, 점화장치 등의 부품들을 조립만 하면 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의 실험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한 방위산업체는 제작과 관련된 모든 Thiokol 사의 기술을 도입하는 MOU를 체결했고, 관련기관은 이 업체에 양산을 의뢰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독자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양산배치에 실패했고 프로젝트를 포함한 모든 활동은 중단됐다.


▲ 항공기 투하용 조명탄 개발을 통해 얻은 교훈= 하지만 조명탄 개발은 연구진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첫째,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열정을 바치면 해결 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둘째, 단열제 접착에서 보여주듯이 많은 기술적 노하우들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며 이런 기술들이 간단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개발해도 관련 부서들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소통해서 우리의 주장을 설득하지 못하면 양산과 배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교훈이었다. 이는 연구진에게 귀중한 교훈이 되어 이후 에도 계속 이어진 국가적으로 중요한 무기체계 개발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됐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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