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방산의 전환기로- (6)1980년대는 방산의 도전의 시기

최종수정 2020.05.23 09:00 기사입력 2020.05.23 09:00

건국 이후 최초의 방산전시회인 대한민국 방산물자전시회(KODEX 1981)가 국방부 주관 방진회 주최로 한국종합전시장에서 1981년 9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됐다. 건국 이후 최초의 방산전시회인 대한민국 방산물자전시회(KODEX 1981)가 국방부 주관 방진회 주최로 한국종합전시장에서 1981년 9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됐다.


[김민욱 월간 국방과 기술 편집장]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와 1980년대 초 전두환 정부의 등장이라는 정치적인 변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방위산업도 뚜렷한 변화를 겪었다. 전두환 정부가 등장한 시대의 상황은 1970년대와 상당히 달랐고, 크게 3가지 요인이 방산정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연구되었다. 첫째는 전두환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사일 개발과 같은 독자적인 개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없었다.


둘째, 1981년 취임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준수, 주한미군 철군 중단, 방산기술 제공 등 동맹국에 대한 확고한 안전보장을 약속함에 따라 자주국방에 대한 인식과 절박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셋째, 전두환 정부는 국가안보나 경제성장보다는 경제 안정화와 사회복지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국방비도 감소되어 GNP 대비 6% 이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방위산업 정책을 요약하면, 정책기조는 정부의 강력한 주도보다는 민간 주도의 방위산업에 중점을 두었으며, 방위산업 육성 의지가 쇠퇴하면서 방위산업이 일반 산업과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어졌다. 고도정밀무기 생산기반 조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기는 했으나, 무기체계 조기 전력화를 위한 해외도입이 힘을 받던 상태였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방산육성 정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크게 5차 회의 이후 방산진흥확대회의의 중단, 무기체계 획득에서 경제성 중시, 방산업체에 대한 정책적 특혜 감소, 국방비의 상대적 감소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방산 가동률의 저하, 경영 압박 및 방산 참여의욕의 저하 등 국내개발의 위축과 국내 방산의 기반이 침체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경제환경 악화, 방위산업 홀로서기= 1980년대에 들어서며 환율과 금리 및 유가인상 등 전반적인 경제 환경의 악화가 진행되자 국내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이러한 악재는 방위산업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에 중복투자로 인한 차입원리금 상환문제와 일부 기업의 부도 문제 등이 겹쳐 방산업계는 전반적인 물량의 감소로 가동률이 저하되는 상황으로 몰렸다.


국방과학연구소도 1980년과 1982년에 걸쳐 미사일 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900여명의 과학자를 감축하고, 국방연구개발비도 1970년대 3.5% 수준에서 1.2~1.4% 수준까지 낮췄다. 이러한 국방과학연구소의 구조조정과 연구원들의 대거 이탈로 연구개발 기반이 많이 약화됐다.


1980년, 방위산업 육성정책은 대통령의 직접통제에서 국방부와 상공부 중심으로 변경 되었으며, 방법면에서도 전폭적인 지원보다는 경제성에 입각한 업체의 자생능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독과점 생산체제에서 제한경쟁체제로 전환됐다.


관련기관 역시 대폭 축소되어 국방부의 방위산업차관보는 군수차관보와 통합되었고 방산 1, 2, 3국은 방산국으로 통합되었으며, 상공부 역시 방산국이 기계공업국의 방산과로 대폭 축소되었다. 거기에 방산진흥확대회의마저 사라지고 방위산업 육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우선순위가 기타 산업 육성과 별 차이가 없어짐에 따라 방산업계, 특히 업체들의 의욕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물론 그간 수차례의 제도와 구조적 개선으로 인해 방산 운영 방식과 업체 지원 구조는 어느 정도 견고해졌으나, 현실적으로 아직까지 방위산업은 업체의 노력만으로 홀로 설 수 없는 기초단계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국가가 독점 구매하는 방식의 방위산업에서 시장의 빠른 자체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었고, 그에 비해 정부의 방위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다.


거기에 때마침 닥쳐온 오일쇼크로 인한 국가 전반의 경제적 위협 속에서 회원사의 방산경영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구매자인 국가가 업체의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고, 원리금 상환에 의해 업체가 재무적 압박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장해 줄 필요가 있었다.


▲ 연구개발 촉진을 위한 지원= 1980년대 초 방위산업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였다. 방위산업육성에 대한 정책적 변화로 인한 불안과, 방산물자의 성능과 안정성 등의 품질관리에 대한 문제였다. 구매자인 정부가 더 이상 국산 제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수입물자와의 경쟁은 필연적이었고, 이 경쟁력의 중심이자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방산물자의 품질이었기 때문이다.


방위산업육성기금도 이 무렵 조성되었다. 방위산업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근거해 1980년 국방부에서 정부 출연금 300억 원을 자산으로 방산업체에 대한 융자지원사업을 개시했고, 2006년 말 융자액은 1,417억 원에 달했다. 방산육성기금은 방위산업을 유지ㆍ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정책자금 중 하나로 주로 부품 국산화 촉진과 원자재 수급을 위하여 유용한 방산지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정부 기금통폐합 방침과 방위사업법 제정으로 '07년부터 폐지되었으며, 방위사업청 일반회계의 이차보전사업으로 전환되어 현재까지 국방 중소ㆍ벤처기업을 비롯한 방위산업 분야 기업들의 경영 여건 개선과 지속성장 기반 강화를 위해 지속 운영되고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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