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방어전의 신화-(5)용기 그리고 신념

최종수정 2020.04.03 07:59 기사입력 2020.04.03 07:59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2월 13일 밤이 되자, 중공군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꽹과리, 징, 피리를 불어대는 심리전을 병행하며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들은 조준을 완료하고 있던 155mm곡사포 6문과 105mm곡사포 18문으로 구성된 미 23연대 포병의 환영을 받았다. 그날 저녁, 포 1문 당 평균 250발 정도를 발사한 것으로 기록이 되었을 만큼 23연대는 화력으로 압도적인 적의 압박을 막아냈다.


하지만 포격만으로 적을 완전히 막기는 역부족이어서 탄막을 뚫고 들어 온 일부 중공군들이 수류탄을 던지며 공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미 23연대의 침착함은 중공군의 도발을 능가했다. 중공군이 내는 굉음을 제압하기위해 사이렌을 크게 울려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았고 사격으로 격퇴하기 힘들만큼 적이 가까이 접근하면 일제히 착검을 하고 밖으로 뛰어나가 물리쳤다. 그럼에도 중공군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2010년 현지에서 열린 지평리 전투 재현 행사. 압도적인 중공군의 공격을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는 혈전 끝에 물리쳤다. 2010년 현지에서 열린 지평리 전투 재현 행사. 압도적인 중공군의 공격을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는 혈전 끝에 물리쳤다.



전투 첫날 연대 지휘소 부근에 중공군의 포격이 집중되면서 군수과장이 전사하고 프리먼도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위기에 빠진 23연대를 돕기 위해 여주에 있던 미 5기병연대가 지평리로 출동했지만 처음부터 중공군의 거센 방해를 받았다. 그러자 연대장 크롬베즈(Marcel B. Crombez)는 전진하다가 막히면 전차에 탑승시킨 보병이 하차해 통로를 개척하는 식으로 돌격을 독려했다.


첫날 공격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중공군은 2월 14일 밤 야음을 틈타 재차 공세를 시작했다. 그들은 철조망이 쳐있지 않은 지평리 남쪽 G중대 지역으로 병력을 집중하여 돌파를 감행했다. 아군이 퍼부어대는 탄막에 수많은 중공군이 녹아내려도 그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여 그들은 쉼 없이 돌격을 감행했고 그날 자정 일부 방어 진지에서는 백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지로 달려드는 중공군의 모습을 본 프리먼 연대장은 '일본군의 반자이 돌격'같다고 상부에 보고했을 정도였고 자정을 지난 2월 15일 새벽의 상황은 몹시 어려웠다. 비록 화력의 우위를 앞세워 막아내고 있었지만 10배가 넘는 병력을 연쇄적으로 투입하며 밀어붙이는 중공군을 물리치기는 상당히 어려웠고 아군의 소모도 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놀라운 분전은 계속되었다.


02시경 중공군이 G중대 진지를 붕괴시켜 위기가 고조되었으나 득달같이 달려든 인접 중대들이 방어선을 사수하여 돌파구 확대를 막자 중공군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17시 30분 미 5기병연대의 선발 중대가 중공군의 포위망을 가르며 마침내 지평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다음날 날이 밝자 미 23연대 장병들은 지평리를 포위한 중공군은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중공군의 철수 후 남겨진 시신들. 미 23연대는 용기와 신념으로 지평리 전투에서 승리하며 야심만만했던 중공군의 4차 공세를 좌절시켰다. 중공군의 철수 후 남겨진 시신들. 미 23연대는 용기와 신념으로 지평리 전투에서 승리하며 야심만만했던 중공군의 4차 공세를 좌절시켰다.



공격 여력을 상실한 중공군이 패배를 자인하고 밤새 철수한 것이었다. 사살된 중공군의 시신 숫자만 4,946구였고 반면 고군분투한 아군은 52명의 전사자와 259명의 부상자, 그리고 42명의 실종자만 발생한 대승이었다. 이것은 아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화력으로 격파하고 승리한 최초의 방어전이었고 야심만만했던 중공군의 4차 공세는 지평리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고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압도적인 적에게 포위당했더라도 화력을 믿고 끝까지 저항한다면 이길 수 있다는 귀한 경험을 얻었고 이것은 이후 고립방어전투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러한 결과를 이끈 원동력은 싸워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불굴의 용기 그리고 동료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념이었다. 그렇게 신화가 된 지평리 전투의 승리로 또 한 번 위기의 순간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살아날 수 있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