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방어전의 신화-(4)확고한 의지

최종수정 2020.04.01 07:07 기사입력 2020.04.01 07:07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지평리는 중앙선 지평역을 중심으로 외곽 약 16km에 이르는 고지들이 주위를 둥글게 휘감는 분지이다. 따라서 이곳을 방어하려면 능선을 따라 원형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미 2사단 23연대는 프랑스대대가 증강 되었음에도 4개 대대 총 5,600여명의 병력으로 고지를 연결한 진지 편성이 불가능했다. 고심 끝에 프리먼은 기상천외한 역발상을 했다.


과감히 고지를 포기하여 방어선을 분지 안으로 앞당겨 구릉과 논둑을 이용한 원형 진지로 축소 편성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렇게 중심으로부터 반경 1.6km 위치에 종심 깊은 지뢰 지대를 만든 후 둥글게 진지를 구축함으로써 방어선을 총 6km 정도로 대폭 단축시켰다. 하지만 적들이 사방의 고지 위에서 아군을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전술적으로 상당히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먼 23연대장은 외곽의 고지를 포기하고 방어선을 내측으로 앞당겨 촘촘히 연결했다. 하지만 사방이 완전히 포위된 상태여서 일각이라도 돌파되면 순식간 전멸 당할 수도 있는 상당한 위험한 작전이었다. 프리먼 23연대장은 외곽의 고지를 포기하고 방어선을 내측으로 앞당겨 촘촘히 연결했다. 하지만 사방이 완전히 포위된 상태여서 일각이라도 돌파되면 순식간 전멸 당할 수도 있는 상당한 위험한 작전이었다.



더불어 병력이 부족해 충분한 예비대를 운용할 수 없었다. 프리먼은 1개 중대를 연대 예비대로, 대대별로는 1개 소대를 예비대로 운용하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방어선을 촘촘히 연결할 수 없어 전차중대를 비롯한 모든 지원 부대들도 방어선에 배치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처럼 의지는 컸지만 반면 일각이라도 돌파되면 그 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프리먼은 병력의 부족을 화력으로 상쇄시킬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형방어망의 중심인 지평역 일대에 지휘소와 포병대대를 배치하여 360도 모든 곳으로 즉시 화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중공군보다 미군 야포의 사거리가 길기 때문에 이러한 배치는 충분히 효과적이라 판단했고 여기에 더불어 압도적인 항공 지원을 자신하고 있었다.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이 신념을 갖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아무리 중공군이 많고 현 위치가 불리하더라도 끝까지 버티면 승리한다는 의지가 없으면 곤란했다. 프리먼은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한 부하들을 믿었다. 게다가 한국전쟁 참전을 위해 스스로 계급을 4단계나 낮추어 프랑스대대를 이끌고 온 몽클라르(Ralph Monclar) 대령이 프리먼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공세 준비를 마친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을 앞세워 미 23연대 원형 방어진지를 2중, 3중으로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공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지평리 공격을 위해 중공군은 모두 4개 연대(제344, 356, 359, 396연대)를 동원했는데, 이들 연대들은 각기 다른 사(제115, 119, 120, 126사)소속으로 처음부터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은 공세가 시작되면 각각 맡은 지역에서 돌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을 뿐이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연대별 공격 시각도 제각각이었다. 중공군은 지평리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포위했으므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심야에 사방에서 출몰하여 약간의 공격만 가하면 미군은 쉽게 공황상태에 빠져 그러면 퇴각로를 막아서고 있다가 소탕하면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어선 종심에 위치해 사방으로 사격을 가한 포병대의 고군분투는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방어선 종심에 위치해 사방으로 사격을 가한 포병대의 고군분투는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중공군은 미 23연대의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미군, 프랑스군 그리고 국군 지원병(카투사)으로 구성된 미 23연대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다국적 부대였지만 똑 같은 신념을 공유하며 적을 상대하려 했다. 반면 중공군은 병력의 우위만 믿고 자만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신력의 차이는 전투 결과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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