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항공기의 심장이 생산되는 곳

최종수정 2021.09.14 09:50 기사입력 2021.09.14 09:50

30여개가 넘는 엔진을 정비하고 있는 정비동.

30여개가 넘는 엔진을 정비하고 있는 정비동.

엔진이 마하의 속도를 내면 소닉붐 현상이 일어난다.

정비를 마친 엔진을 시험가동하고 있는 시운전실.


[아시아경제 양낙규 군사전문기자]우리 군은 한 대의 전투기도 없는 상황에서 6.25 전쟁을 맞았다. 공군은 연락기에서 폭탄을 맨손으로 투하하며 고군분투했다. 이후 미 공군으로부터 F-51 전투기를 도입했고 1951년 10월 11일 최초 단독 출격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엔진 정비를 하지 못해 미군 손에 모든 걸 맡겨야 했다. 7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항공기 엔진정비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2일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지 공장을 찾았다.


공장 입구에 들어서자 주황색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에는 ‘항공기 엔진 글로벌 넘버원 파트너’라는 문구가 기자를 반겼다. 건물 1층에 들어서니 함정, 헬기, 전투기 엔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1978년 F-5 전투기 엔진 정비부터 시작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의 엔진인 T700-701K을 개조해 개발까지 했다. 엔진 이름에 붙은 ‘K’는 한국 모델이라는 뜻으로 사실상 국내 1호 자체 개발 엔진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조사인 롤스로이스, 제너럴일렉트릭(GE), 프랫앤드휘트니(P&W) 엔진도 정비한다. 이승두 엔진조립생산기술팀장은 "육·해·공군이 사용하는 30여 개 엔진을 모두 정비하고 있다"면서 "함대함 미사일인 해성 등 미사일 엔진은 자체 생산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 건물인 엔진조립동으로 이동하자 가로·세로 1m 크기의 엔진부터 4m 크기 엔진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얼뜻 보기에는 다 똑같이 보였지만 좌측엔 소형무장헬기(LAH) 엔진을, 우측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엔진을 비롯한 함정엔진 등으로 구분해 놓았다. LAH 엔진은 프랑스 사프란(Safran)의 것으로, 800여 종 부품 중에 주요 부품 14종을 국산화했다. 가격으로 따지면 엔진 가격의 22%에 해당한다. 회사 관계자는 "엔진은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인 미크론(1000분의 1㎜) 단위 오차까지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가 수술하는 기분으로 정비를 진행한다"고 귀띔했다.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는 본격 생산하기 앞서 시험 평가를 위한 시제기 6대를 만든다. 전투기 1대 당 엔진은 2개가 장착된다. 총 12개 엔진에 여분의 엔진 2개를 합해 15개 엔진을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10개의 엔진은 GE사에서 직도입하고 2개의 엔진은 면허 생산을, 3개의 엔진은 부품 국산화를 할 예정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전투기에 우리의 심장을 장착한다는 의미다.


군에서 사용하던 엔진을 분해해 정비하는 엔진 정비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용하던 엔진은 검정색, 정비를 마친 엔진은 새 것처럼 은색을 띄고 있어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사용하던 엔진은 나사 하나까지 모두 분해해 초음파 등 비파괴검사를 해야 하고 교체와 재사용을 판단해 다시 조립한다. 정비를 마친 엔진은 수명이 10년 늘어난다.


정비를 마친 엔진은 시운전실로 옮겨진다. 엔진을 시험 가동해 최대출력까지 끌어올렸다. 시간은 단 1분. 바람 한 점 없던 고요한 시운전실안에서 굉음이 새어 나왔다. 엔진에 매달린 선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운전실 밖 모니터 수치가 끝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엔진에 파란색 배기 불꽃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투기가 마하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최대출력을 내기 시작했다. 출력을 높이니 엔진 배기 불꽃에 ‘소닉붐’(Sonic Boom) 현상도 보였다. 소닉붐은 자신이 내는 소리보다 더 빨리 움직일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주변에 하얀색 증기 같은 연기가 나타난다. 회사를 빠져나오니 "우리의 하늘, 땅, 바다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라는 관계자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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