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의 Defense Club]주한미군 철수… 북한의 속마음은 달랐다

최종수정 2020.07.25 08:00 기사입력 2020.07.25 08:00

1992년 김일성 주석 “통일 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을 것”
김정일 국방위원장 2000년 남북정상회담때 “주한미군의 필요성 인정”

주한미군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미국발 주한미군 감축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앞으로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겉으로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한편 속으로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해 왔기 때문에 겉과 속이 다른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 19일 사진을 한장 공개했다. 북한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 회의와 비공개회의를 각각 열어 전쟁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문제들을 논의했다며 비공개 중앙군사위 회의 모습을 공개했다. 노동당 중앙위 확대회의는 한국과 미국식으로 말하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해당한다.


이날 회의가 주목을 끄는 건 최근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진행 중이란 사실이 알려진 직후 열렸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들은 회의에서 "조선반도 주변에 조성된 군사 정세와 잠재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 부대들의 전략적 임무와 작전동원태세를 점검하고 나라의 전쟁억제력을 더한층 강화하기 위한 핵심문제들을 토의했다"고만 전했다. 주한미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북한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속으로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해왔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1992년 1월 북미 간 평화협정이 논의될 당시 김일성 주석은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미국으로 보냈다. 당시 김 비서는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에게 북미 수교를 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제안하면서 통일 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실상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보면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14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되어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미국에 이런 뜻을 비췄다. 1992년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자신 역시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지도부의 이런 입장은 북한통인 외국 정치인과 학자들 사이에서도 증명이 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2003년 발간한 회고록 '마담 세크레터리'(Madam Secretary)'에서 2000년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묻자 그가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정하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냉전 이후 북한 정부의 관점이 바뀌었다"면서 "미군은 이제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 기지와 훈련장을 통ㆍ폐합해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주한미군부대 인근 주민들의 민원을 대폭 줄이기 위해서다.


북한 겉으론 주한미군 철수 주장… 내부단속 차원과 민심 달래기용
중국·러시아와 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 철수가 공식입장

한반도 문제 전문언론인으로 활약했던 고(故) 셀리그 해리슨도 생전 북한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하고 있다고 줄곧 강조했다. 해리슨은 워싱턴포스트 동북아지국장 재직 시절이던 1972년 5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등 2009년 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미국 내 대표적인 북한통이었다.


해리슨은 1996년 미국에서 열린 한반도 문제 세미나에서 군사정전위원회 김영남 외교부장(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으며 미군이 당분간 한반도에 주둔해 안정 유지 기능을 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다른 북한 관리들도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북한 내부매체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을까. 이를 놓고 대북전문가들은 내부단속 차원과 민심달래기용 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내부적으로 미국을 '최대ㆍ최고의 적대 대상'으로 삼았고,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전쟁을 재발할 암덩어리로 규정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최고지도부가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속내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북한 주민을 상대로 이런 점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중국과 러시아와 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공식적인 입장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다. '북중 공동의 목표'라는 것이다. 중국 역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주일미군은 물론 주한미군의 존재가 미국의 영향력을 떠받치는 무력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한다.


주한미군이 북한의 침략 위협에 맞선 한미동맹의 결과물이라는 한미 양국의 주장과는 달리 중국은 북한 이외에 베이징(北京) 등 중국 동북부를 겨냥한 미국의 군사력으로 여긴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중국이 '경악'하고 격렬히 반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는 중국과 북한에 이로운 상황만 만들어준다는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새로운 병력 철수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관계를 위험에 빠트린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에 주둔하는 미군이) 외국만 방어하고 미국의 안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독일, 일본 및 한국 같은 가까운 동맹국들이 자국 주둔 미군에 대해 충분히 '지급'하고 있지 않다는 심하게 잘못된 생각을 진전시켰다"며 재선 캠페인이 흔들리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감축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독일 주둔 미군 4분의 1을 철수시키라고 명령했다. WP는 이를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맹의 와해만을 바라는 러시아 통치차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엄청난 선물을 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감축 관련 옵션(선택지)을 제시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를 언급했다. WP는 "그것은 북한 독재자 김정은뿐 아니라 중국의 시진핑 정권에도 호재"라고 분석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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