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에 대한 군의 보안조사

최종수정 2020.06.11 10:50 기사입력 2020.06.11 10:45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1년 만에 고향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움도 잠시였다. 선배는 "도대체 어떤 기사를 썼길래 내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보안조사를 받아야 하냐"라며 항의했다. 지난해 국방대학교에서 함께 연수를 받던 대령도 똑같은 이유로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기자의 고향ㆍ학교 선후배들에게 받는 전화는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이들은 어떤 기사로 보안조사를 받았을까. 지난해 12월 본지에 게재된 '고고도 무인정찰기(HUAS) 글로벌호크(RQ-4) 1호기 도착' 기사를 시작으로 보안조사는 시작됐다. 지난달 6일 '현무-4' 탄도미사일의 첫 시험 발사와 같은 달 15일 대규모 해상사격합동훈련을 실시했다는 기사가 이어 지자 보안조사는 한 차례 더 이어졌다. 당시 국방부 당국자는 기자에게 직접 경고를 하기도 했다. 이 당국자는 "민감한 기사를 계속 쓰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지 않겠냐"라는 협박성 압박을 가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취재원 색출에 불과하다는 원성이 쏟아졌다. 정례 브리핑에서 이를 공식 항의하자 국방부는 "보도과정을 지켜본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보안조사는 언론 보도에만 해당됐다. 지난 4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통해 글로벌호크의 도입을 알렸다. 국방부는 해리스 대사를 상대로 보안조사나 항의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전략자산은 비공개 사안이라며 글로벌호크의 존재마저도 감추던 국방부가 정작 비밀을 누설한 해리스 대사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셈이다.


국방 관련기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보안조사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방위사업청은 청을 방문하고 나오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보안검색대 통과 후 가방 안에 있는 문건의 출처까지 조사하기 때문이다. 폭발 물질 등 테러 위험이 있는 물건을 지니고 있다면 보안검사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가방 안에 문건의 출처까지 확인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보안조사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불만도 나온다. 9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왔다. 민원인은 "최근 기밀 유출 언론보도가 나간 뒤 국방과학연구소장은 보안강화란 명목으로 연구원들을 차출해 퇴근 차량을 검사 시키고 있다"며 "첨단무기 개발에 몰두해야 할 연구원들은 땡볕에 자동차 트렁크 검사를 하기 위해 입소한게 아니다"고 항변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항상 고민한다. 보도로 인해 혹 이적행위가 될 여지가 있는지를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오늘은 한 가지 고민을 더 하게 된다. 이 기사조차 보안조사 대상은 아닌지.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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