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방어전의 신화-(3)운명의 장소

최종수정 2022.09.26 15:57 기사입력 2020.03.31 06:17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지난 3차 공세로 서울을 재점령했으나 보급이 바닥나 한 달 가까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던 펑떠화이도 공교롭게 리지웨이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유엔군의 방어가 느슨한 중부전선의 횡성에 돌파구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대대적인 전력 증강에 나섰다. 압록강을 건너온 많은 물자들이 심야에 유엔 공군의 눈을 피해 전선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월말이 되자 다시 공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피아 모두가 똑같은 곳을 전쟁의 주도권을 확보할 장소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당시 전선의 구조가 극히 제한받고 있었다. 결국 양측의 생각이 모아진 중부전선의 홍천~횡성 축선은 거대한 피바다로 비화될 운명이었다. 선공은 중부전선을 담당하던 미 10군단이 1월 31일, 먼저 실시했다. 목표는 영서지방 교통의 요지인 홍천이었다. 만일 이때 미군이 북진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중공군이 남하할 예정이었다.


미 10군단이 홍천을 공략하기 위해 이동 중이다. 이때 선공을 하지 않았더라도 조만간 중공군이 공세를 시작할 예정이어서 중부전선에서 커다란 충돌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셈이었다.



진격을 개시한 미 10군단은 전선을 30킬로미터 이상 북으로 밀어 올리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남쪽 초입인 삼마치 고개를 선점하던 중공군 198사의 격렬한 방어에 막혀 아군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미 10군단 좌익을 담당하던 미 2사단 23연대도 함께 북진을 개시해 2월 3일 서부와 중부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양평군 지평리를 점령했다.


결국 목표했던 홍천 탈환은 실패했지만 리지웨이는 중공군 참전이후 최초로 시도된 대대적인 반격으로 전선을 걷어 올렸으므로 일선의 사기를 앙양하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이제 다시 공격을 가해 홍천을 탈환하고 전선을 38선 부근까지 몰아붙이면 중공군이 자연스럽게 서울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아군의 이런 장밋빛 전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동안 유엔군의 움직임에 대응을 삼가며 은밀히 준비를 완료한 펑떠화이는 아군의 공격이 둔화되기 시작한 2월 11일, 행동에 나섰다. 이른바 중공군의 4차 공세였는데 중공군의 주력이 쇄도한 곳은 횡성 북부의 국군 8사단과 3사단이 담당한 섹터였다. 이때 8사단이 불과 4시간 만에 해체 수준의 참패를 당하면서 전선 중앙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야말로 대책 없는 패주였다.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미 10군단은 전선의 붕괴를 막기 위해 진격로를 뒤돌아 열흘 전 출발 지점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지평리를 선점했던 미 23연대도 여주 인근으로 후퇴하려 했고 그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하지만 리지웨이는 지평리를 포기하면 나름대로 선전을 펼치며 한강 남단까지 진출한 서부전선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여 현지를 사수하도록 명령했다.


역사적인 지평리 전투를 이끈 폴 프리먼 연대장은 이후 대장까지 진급해 유럽주둔미군사령관으로 복무했다.



그런데 리지웨이가 주목한 지평리의 중요성은 펑떠화이도 똑같이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공세는 횡성 일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중부전선의 붕괴를 통해 전선 전체를 37도선 이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서부전선에 있는 유엔군도 후퇴하도록 압박을 가해야할 통로가 필요했다. 따라서 중공군도 그 목지점인 지평리를 차지하려 했다. 사실 한반도 동부는 지형이 워낙 험하다보니 차지해야 할 요충지는 뻔했다.


결국 적진 한가운데 고립된 지평리는 대한민국의 명운을 건 역사적 전투가 벌어질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사수 명령을 받은 연대장 프리먼(Paul L. Freeman Jr) 대령은 암담했다. 방어에 나선 미 23연대는 5,600여명이었지만 양평군 일대에 출몰한 중공군 39군은 열배가 넘는 60,000여명이었고 그중 4개 연대 20,000여명이 지평리를 완전히 포위한 상태였다. 어쩌면 승패는 결정 난 것과 다름없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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