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산책] 오데옹 상점 - 중세 유럽이 열린다…서울의 '쁘띠 프랑스'

최종수정 2021.01.21 14:43 기사입력 2021.01.21 14:43

코로나 1년, 사실상 유럽여행 막히자
도심 속 유럽 분위기 내는 장소 인기

정세희 대표, 파리 오데옹 여행 후
그때의 기억과 감정으로 가게 꾸며

나무간판 보고 나무문 열고 들어가면
몽환적인 노래가 귓가를 때리고
특유의 분위기가 유럽 온듯 마음 울려
촛대·술잔·엽서 등 중세 분위기 흠뻑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빈티지소품숍 '오데옹 상점'의 외부 전경.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쳇바퀴 돌듯 뻔한 일상에 지친 이들은 삶의 쉼표를 찍기 위해 여행을 택한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경관을 음미하고 있노라면, 뇌리에 맴돌고 있던 걱정과 고민은 모두 잊히고 새로운 생각과 활력을 얻는 경우가 많다. 여행은 단조로운 일상을 재충전하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때론 깊은 영감을 안겨주는 뮤즈인 셈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사실상 막힌 지금, 여행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간절해진다. 그래서일까. 도심 속 ‘작은 프랑스’로 불리는 곳에 인스타그래머들의 관심이 높다고 한다. 무엇보다 빈티지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여행지에서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감성을 물씬 풍기는 곳,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소품숍 ‘오데옹 상점’을 찾아가 본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10분 남짓 걷다 보면 한적한 골목 안에서 상점을 만날 수 있다. 나무문을 열고 상점에 들어서면 몽환적인 노래와 함께 이곳만의 오묘한 분위기에 금방 매료된다. 족히 몇십 년의 세월이 담긴 엽서와 손때 묻은 고서적,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는 황동 촛대 등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프랑스 파리의 한 골동품 가게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가게 한쪽에 놓인 계단에는 여행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 엽서와 주인장이 직접 그린 그림 등이 진열돼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 흘러나오는 나른한 느낌의 노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독특한 오브제는 이곳을 신비롭게 만든다. 더욱이 찾는 이들이 이 공간에 온전하게 집중하는 까닭은 시끌벅적한 도심과 다른, 이곳만의 차분한 분위기 때문이다.


'오데옹 상점'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오브제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이곳은 정세희 대표(35)가 여행에서 얻은 생각과 영감을 바탕으로 탄생한 공간이다. 2015년 6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프랑스 파리 오데옹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정 대표는 그때의 기억과 감정을 이곳에 표현했다. 그는 “한 달간 머물렀던 오데옹에서의 여행이 끝날 무렵, ‘내가 이곳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아쉬웠다”며 “이 공간은 내가 당시 느낀 생각이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곳”이라고 했다. 여행을 마친 그는 이듬해인 2016년 그만의 감성을 가득 담은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마치 중세시대 유럽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품목들이 갖춰져 있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 좋아했을 법한 촛대, 술잔 등은 이곳의 개성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1950년대 유럽 지역의 사진집부터 100년이 넘은 빛바랜 엽서, 150년의 시간이 담긴 조각상 등 이곳저곳 세월이 묻은 물품들 덕에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 대표는 “가게에 100년 된 물건들은 흔하게 있다. 이곳에서 그나마 오래되지 않은 물건들이 40~50년 된 것들”이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금속으로 만든 오브제와 함께 빈티지 엽서가 눈길을 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그가 낡은 물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물건에 묻은 ‘세월의 흔적’이 마음을 이끈다고 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건의 색도 변하고 형태가 닳지만 그런 것들에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는 정 대표는 "오래된 물건들을 볼 때마다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 게 빈티지 물건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이 담긴 물건을 일일이 수집하기란 쉽지 않을 터. “빈티지 물건은 모두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온다”고 말한 정 대표는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취향과 조화로움을 꼽았다. 그는 “제 취향에 맞아야 하고 원래 가게에 있던 물건인 것처럼 튀지 않아야 한다”며 “이 공간과 이질적이지 않은 조화로운 물건을 공수해온다”고 했다.


취향이 가득 담긴 물건인 만큼 정 대표는 아끼던 빈티지 제품을 떠나보낼 때 내심 허전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오래된 물건에는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애정하던 물건들과 헤어질 때면 종종 아쉽다”고 털어놨다. 이어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물건에 대한 진가를 알아봐 주는 손님이 나타났을 때 ‘좋은 주인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보람차다”고 덧붙였다.


빈티지 소품숍 '오데옹 상점'의 내부 모습. 가게 한편에 놓인 계단은 '여행에서의 기억을 상점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정 대표는 음악·영화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직접 물건을 제작하기도 한다. 금속 트레이와 나무로 만든 선반, 컨버스 위에 그린 다양한 그림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새것일 때보다 낡을수록 더 매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물건을 샀을 때 ‘새것’이라서 좋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저는 이런 것보다 물건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소중해지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소재다. 정 대표는 “도금은 시간이 지나면 벗겨진다. 그렇게 되면 물건에 애정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게 된다”면서 “흙으로 구운 도기나 황동 제품 등은 오랜 기간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가게에 금속·도기 제품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 대표는 다른 수식어 없이 오직 ‘오데옹 상점’만의 분위기로 기억되길 원했다. 그는 “손님들이 훗날 이곳을 떠올렸을 때, ‘예쁜 물건이 있던 곳’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먼저 떠올려주셨으면 좋겠다”며 “마치 ‘오데옹 상점’에 여행 온 것처럼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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