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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영웅 ‘허봉익 대위·김교헌 선생·이범윤 선생’

최종수정 2018.07.31 09:54기사입력 2018.07.31 09:54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8월의 6ㆍ25전쟁영웅'에 안동지구 전투영웅 허봉익 대위(1926년1월~1950년 8월)가, '8월의 독립운동가'에 대종교 2대 교주인 김교헌 선생(1867~1923)이, '8월의 호국인물'에 의병부대를 이끈 이범윤 선생(1856.5~1940.10)이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처가 6ㆍ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한 허 대위는 안동지구 전투영웅으로 불린다. 안동지구 전투는 6ㆍ25전쟁이 발발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기 직전 국군 제8사단과 수도사단 1연대가 안동지역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제8사단 소속 일부 병력의 침공을 나흘간 저지한 방어전투였다.

1950년 7월 31일 새벽 북한군 12사단은 전차를 앞세워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고, 육군본부는 낙동강 방어 계획에 따라 같은 날 안동에서 국군의 철수명령을 하달했다. 그러나 8사단 제16연대는 북한군 1개 연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가 철수명령을 뒤늦게 받았다.북한군에게 포위된 16연대는 포위망을 뚫고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장교 21명과 병사 814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피해를 봤다. 이 과정에서 제3대대 3중대장 허봉익 대위는 2개 소대 병력을 인솔해 안동 점령을 기도하는 북한군 2개 대대 병력과 백병전을 벌였다. 8월 2일 그가 지휘한 3중대는 북한군 1개 중대를 격멸하고 압축된 포위망을 돌파하고자 고군분투했으나 북한군의 포격으로 전사했다. 허 대위의 유해는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으며,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리어 1954년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김교헌선생은 1898년부터 독립협회에서 활동했다. 독립협회 간부진들이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을 요구하다가 구속되자, 독립협회의대표위원으로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자 대종교에 입교했고, 1916년 나철에 이어대종교 2대 교주로 취임했다. 선생은 1919년 2월 대종교 주요 인사 및 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와 함께 뜻을 모아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일, 현천묵 등 대종교인사 중심으로 조직된 북로군정서에 참여했고, 이듬해 10월에는 홍범도ㆍ김좌진 장군이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선생은 1923년 만주에 있던 대종교 본사 수도실에서 순국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이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한이범윤은 1856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간도관리사로 파견됐다. 당시 간도에는 한인 농민 7만여명이 거주했다. 이들 농민과 '사포대'를 조직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사포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함께 반일 군사작전에 참가했다. 이듬해 러시아 노보키예프스크를 활동 기지 삼아 항일단체인 '창의회'를 결성해 이른바 연추의병부대(이범윤 의병부대)를 이끈다.1919년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군부'를 조직해 총재를 맡았고 1921년에는대한독립군에 참여했다.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신민부' 조직 당시 참의원장에 추대되어 성동무관학교를 설립해 무관 양성에도 힘썼다. 이후에도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하다가 1940년 10월 20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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