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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가'에 연미당 선생

최종수정 2018.06.29 09:02기사입력 2018.06.29 09:02

<h1>'7월의 독립운동가'에 연미당 선생</h1>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7월의 6ㆍ25 전쟁영웅'에 김해수 경감과 석상익 경위가, '7월의 독립운동가'에 연미당 선생이 선정됐다.

29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7월의 6ㆍ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김해수 경감과 석상익 경위는 6ㆍ25전쟁 발발 당시 이들은 10만㎾ 규모의 화력발전소가있는 영월을 방어하는 강원도비상경비사령부에 소속돼 1950년 7월 1일 북한군의 대대적 공세에 맞섰다.

전경 제8대대와 홍천군ㆍ인제군의 병력 100여 명에 당시 김인호 총경(강원도경찰학교장)이 부대장으로 임명된 영월방어부대는 수차례의 공방전 끝에 후퇴했으나, 김해수 경감과 석상익 경위는 영월을 탈환하려는 작전에 투입됐다가 전사했다. 강원도비상경비사령부가 7월 7일 오전 상동지역 전경 제8대대 제1중대장 김해수경감을 대장으로 47명의 결사대를 편성해 영월 재공격하라고 결정했고, 그 명령에 따라 7월 8일 오후 2시 북한군과 백병전을 펼쳤다.

북한군의 대병력이 결사대를 포위해 공격했고, 김해수 경감은 적의 박격포탄 파편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이어 석상익 경위가 대신 결사대를 지휘하며 용감히 싸웠으나 안타깝게 전사했다. 당시 전투에서 아군은 24명이 전사했고 북한군은 73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투 현장인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에는 당시 전경 대원들의 넋을 기리는'호국경찰전적비'가 세워졌고, 매년 추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여성 독립운동투사인 연미당(1908.7~1981.1ㆍ사진) 선생은 1927년 7월 청년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결혼했다. 결혼 이후 남편 엄항섭을 내조하며, 자녀들의 교육 나아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삶은 당시 독립운동가를 남편으로 둔 여성들의 일반적인 생활방식이었다. 선생은 1927년 11월 상하이에서 결성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한 데 이어여성들의 독립운동 참여 독려와 역량 결집을 위해 '상해여자청년동맹'에서도 활동했다.

1936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재건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 정착하자 한국혁명여성창립동맹을 발족하고 애국부인회를 재건했다. 충칭 방송국에서 일본군 소속 한인 사병들을 광복군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반일선전 활동도 전개했다. 선생은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있는 한인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다가 1946년 6월 3일 귀국했다.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납북돼 생이별한 뒤 선생은 중풍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다가 1981년 1월 1일 순국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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