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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한 11월의 영웅들

최종수정 2018.10.31 09:22기사입력 2018.10.31 09:22

<h1>나라를 구한 11월의 영웅들</h1>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11월의 호국인물로 조관묵 경감이, '11월의 6ㆍ25전쟁영웅'으로 박기석 육군 이등중사, 최재효 육군 하사가,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조경환(1876.2~1909.1사진) 선생이 선정됐다.

31일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1927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한 조관묵(1927.1~1950.11) 경감은 1948년 순경으로 임용되어 강원경찰국 춘천경찰서에 근무하던 6ㆍ25전쟁을 맞았다. 당시 경찰의 주요 임무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의 북진 때 후방에 고립된 적을 토벌해 치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서울 수복 후 국군의 북진이 본격화되던 1950년 10월 조 경감(당시 경위)은 춘천경찰서 양구파견대 중대장으로 양구지역 치안업무를 맡았다. 같은 해 11월 3일 인민군 제 10사단 소속 1개 연대 규모의 패잔병들로부터 습격을 받은 양구파견대는 강원도 북산면 내평리까지 후퇴했다. 조 경감은 양구읍 학조리 인근 야산에 임시진지를 편성해 반격을 시도했다. 그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작전을 지휘하던 중 복부 관통상으로 전사했다. 당시 조 경감과 양구파견대의 활약으로 부근 2천여 명의 국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경위에서 경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1992년 5월 23일 강원도 양구군은 충혼비를 세웠다.

보훈처에 따르면 박기석 육군 이등중사, 최재효 육군 하사는 6ㆍ25전쟁 당시 철원지구 281고지 전투에서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해 고지를 재탈환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들이 소속된 국군 제9중대가 281고지 정상 20여m 전방에 이르렀을 때 중국군은 모든 자동화기를 동원해 아군의 돌진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이때 박기석 이등중사가 포복으로 중대장에게 다가가 특공대를 조직해 적의 자동화기 진지를 격파하겠다고 말했다. 중대장은 최재효 하사를 비롯한 특공대 4명을 선발했다. 박 이등중사와 최 하사가 먼저 절벽을 기어올라 2개의 적 기관총 진지를 각각 수류탄으로 파괴하고, 뒤이어 나머지 대원들이 백병전으로 중국군을 물리쳤다. 이에당황한 중국군은 도주했고, 특공대원들은 281고지를 탈환했다. 이에 따라 아군은 적의 공세를 격파하고 철원 북쪽의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박기석 이등중사와 최재효 하사는 1951년 11월 25일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경환(1876.2~1909.1) 선생은 일제의 침략이 자행되던 시기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현실을 두루 살피고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차려 후학을 육성했다.

1906년 태인에서 을사늑약에 반발해 최익현과 임병찬 등 '순창 12의사'가 의병을 일으켰으나 서울로 압송되고 최익현은 대마도에서 순국했다. 1907년 호남지방에서 기삼연과 김준 등이 고창읍성을 점령하는 등 맹활약을 떨치자 선생은 그해 12월 중순 김준 의진(義陣)에 합류해 좌익장으로 활동했다. 함평읍, 창평 무동촌, 장성 낭월산, 영광 월암산, 광주 어등산(魚登山) 등 수많은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나섰다.

1908년 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의병장 김준이 순국한 상황에서 일본군이 추격해오자 함평 당산촌 나평집(羅平集)으로 후퇴했다. 일본군의 진압작전이 종료되고 감시망이 느슨해지자 흩어진 의병들을 다시 모아 전열을 정비했다. 전북 이석용 의진에서 활동하던 전수용과 연합해 200여 명 규모로 의진을 재편하고 의병장이 됐다. 일본제 30년식 보병총과 기병총 4정, 한병총(韓兵銃) 12정, 천보포(千步砲) 8문, 개조 화승총 약 60정 등의 열악한 무기로 일본 군경과 맞서 싸웠다. 1909년 1월 조경환 의진은 야마다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20명이 전사하고 10명이 붙잡혔다. 선생은 총탄을 맞고서도 부하들의 명단을 불사르고 순국했다. 정부는 1963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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