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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까지 번지나

최종수정 2018.04.19 09:10기사입력 2018.04.19 09:10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4ㆍ27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부상한 가운데 북한이 주한미군철수까지 거론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현재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를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비핵화 실현을 위한 필수적인 부분으로 보고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18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정부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주력해야 할 부분은 '남북한 군사적 긴장해소'라며 그 방안으로 DMZ 내 GP 철수를 언급한 점도 이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주한미군철수를 제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1990년 5월 31일 중앙인민위원회.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정무원(내각) 연합회의 형식으로 군사훈련과 군사연습의 제한,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남북 10만명 이하 단계적 병력 감축, 한반도 비핵지대화, 외국군 철수 등 10개 항의 군축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4일에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북 대화파였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전격 경질한 다음 날이다. 노동신문은 '약탈자의 흉계가 깔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주한미군을 "미제 침략군"으로 칭하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내라고 하는 것은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무지막지하게 놀아대는 날강도적 처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남조선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불청객인 미제 침략군의 무조건적인 철수"라며 이번 협상이 한국 국민의 "혈세를 강탈해낼 흉심"이라는 표현을 동원했다.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으로 한국에 "막대한 피해와 재난을 입힌 데 대해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주한미군 철수 압박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주한미군'을 언급했다. 미주리주에서 열린 한 모금 만찬에서다. 워싱턴포스트(WP)의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철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국과의 무역 적자를 언급하면서 나온 것이어서 "위협을 한 것"이라고 WP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7월 대선 후보 시절에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7월 한ㆍ미 정상회담 당시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을 거론한 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공정한 분담이 이뤄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문에 미 본토내부에서 주한미군 논쟁이 이어질 경우 '제 2 닉슨 독트린'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 우방국들은 스스로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SCM 4차 회의를 개최한 1971년에 7사단 병력중 2만명을 철수시켰다. 이후 2사단 병력 3400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1985년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당시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의 당권을 장악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라고 불리는 개혁ㆍ개방을 추진한 것이다. 이 정책으로 미의회는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됐다고 판단하고 국방비 축소를 주장했다. 이때 생겨난 법안이 샘 넌 민주당 상원의원과 존 워너 공화당 상원의원 등 미 의회 의원 13명이 제출한 일명 '넌-워너'법안이다. 이 법안에 압박을 받은 H. W 부시 대통령은 1990년 4월19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미군의 감축 계획을 담은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I) 문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한미연합방위태세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한다.

발표에는 1992년까지 적용할 1단계, 1995년까지 2단계, 1996년 이후에 3단계 등 단계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안을 담았다. 1992년까지 육군 5000명과 공군 2000명 등 총 7000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1995년까지 6500명의 주한 미 육군병력과 공군병력을 추가로 줄이며, 1996년 이후에는 최소한의 미군만 주둔시킨다는 것이다. 한미 합참의장은 1990년 11월에 열린 한미 군사위원회회의(MCM)에서 지상군 5000명과 공군 1987명 등 총 6987명의 주한미군을 1992년까지 줄이기로 합의했다. 1단계는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2ㆍ3단계 방안의 대부분은 유보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조짐 때문이었다.

이후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시도함에 따라 동아시아 전략구상의 나머지 부분을 유보하기로 합의했다. 1994년 북핵위기가 본격화되자 다음해인 1995년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서(EASR)를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주한미군 병력은 3만여명의 수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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