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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문정부 ‘6ㆍ25전쟁 종전선언’ 가능할까

최종수정 2018.04.09 08:28기사입력 2018.03.24 15:00

지난 13일 북한군 병사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했던 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27일 오전 판문점 사건 현장 인근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남측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2017년 11월 27일/파주=사진공동취재단/서울경제신문/송은석)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청와대가 '6ㆍ25전쟁의 종전'을 선언에 대해 "순차적으로 보면 당연히 예측할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라고 말해 종전선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남북미 3국 정상회담이나 종전 선언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된 적이 있어 현실성이 있다는 것이다.

23일 정부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제2차 회의에 참석해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세계사적인 일"이라고 자평한 뒤 "진전상황에 따라서는 남ㆍ북ㆍ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경제적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고 한미는 그 부분에 대한 개입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휴전협정은 어떻게 체결됐나=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 이날은 제159차 본회의가 열리는 날로 휴전협정 조인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조인식에 참석한 사람은 유엔군 수석대표인 해리슨 미 육군 중장과 공산군 수석대표인 남일 일행이었다. 양측 대표들은 서로 악수도 인사도 없이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된 전문 5조63항의 정전협정 문서에 서명했다. 정전협정 서명 12시간 후인 그날 오후 10시가 되자 한반도 전역에서 포성이 멈췄다. 3년 1개월 2일 동안 지속된 6ㆍ25전쟁이 막을 내리고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이처럼 불완전한 형태의 정전협정은 발효되자마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군사정전위는 협정발효 다음날인 53년 7월 28일 제1차 본회의를 시작으로 459차 본회의까지 열렸으나 91년 3월 25일 군정위 유엔사측 수석 대표로 한국군 장성이 임명된 뒤부터는 개최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 북한은 94년 4월28일 군정위 철수를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15일 군정위 중국측 대표단도 철수해 군정위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다.

군사인원 작전물자 반입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산하에 '중립국 시찰소조'를 조직, 53년 8월19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열흘도 안 돼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북측은 남한에 머물고 있는 폴란드와 체코 시찰소조가 지정된 지역의 출입을 통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측은 시찰소조가 북측과 결탁해 '간첩행위'를 자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북측이 다섯 개 이외의 출입항을 통해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각종 무기 장비들을 반입하고 있어 시찰소조 운영이 불필요하다고 맞섰다.

중감위 스웨덴 대표가 55년 4월13일 제189차 중감위회의에서 중립국 시찰소조의 철수를 제의하고 군정위 유엔사측은 56년 5월31일 제70차 군정위 본회의에서 중립국 시찰소조의 활동중지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정전협정 위반사항을 감독해야 할 중감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휴전협정에도 도발은 지속= 휴전협정이후 북한의 도발도 계속됐다. 정전협정 제1조에 따르면 쌍방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각각 2㎞씩 후퇴해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도록 돼 있으나 남북 모두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시설물과 경계 병력을 운용했다.

2016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54년부터 올해까지 남한에 대한 북한의 침투와 국지도발은 3094건이다. 적대행위 금지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는 셈이다. 간첩남파 같은 침투행위가 1977건, 천안함ㆍ연평도 사태 같은 국지도발이 1117건이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례는 43만건이 넘는다.

대표적인 무력도발은 5, 60년대에는 58년 KAL기 피랍사건, 67년 해군 경비함인 당포함(PCE-56.650t급) 피격사건, 68년 청와대 기습사건, 68년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대한항공 YS-11기 피랍사건, 69년 미 EC-121 정찰기 피격사건 등이 있다. 7, 80년대에는 70년 국립묘지 폭파사건, 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83년 미얀마 양곤 폭탄 테러, 87년 KAL기 폭파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90년대와 2000년대엔 91년 무장 경비정 백령도 근해 침투, 96년 동해 무장공비 침투, 97년 대성동 주민 강제납치, 99년 제1연평해전,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등이 있다.

▲종전선언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 종전선언이 논의된 적도 있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6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만나 한국ㆍ미국ㆍ북한 3국이 '종전협정'(종전선언)에 서명하는 방안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협정'이 구체적으로 종전선언인지 아니면 평화협정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반도의 '평화 세리머니'에 3국이 함께 하자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 북한이 가장 우려해온 미국의 '북한 체제변화' 의도에 대해 '안전보장'을 해 줄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10ㆍ4 남북 정상 선언을 했다. 공식 명칭은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지만 보통 '10ㆍ4 선언' '10ㆍ4 합의'로도 불린다. 10개 항의 공동 선언은 ▲한반도 종전 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추진 ▲남북 정상의 수시 회동 현안 협의 ▲총리ㆍ국방장관회담 개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공동어로수역 설정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종전 선언을 주도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만료로 물러나면서 추동력을 상실했다.

문재인 정부 종전선언을 추진하더라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북핵 문제가 1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의지나 비핵화 협상에는 차질이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 내 대북 강경 세력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전격 경질하고, 대북 '초강경파'로 꼽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후임으로 발탁했다. 북한과 이란 등의 국제 문제에 관해 초 강경론을 설파하는 그의 발탁을 두고 주요외신은 "'슈퍼 매파'(super-hawk)가 NSC 보좌관으로 임명됐다"고 했고, AFP 통신은 "'최강 매파'(arch hawk) 볼턴이 맥매스터를 대신한다"고 보도했다. 볼턴 전 대사는 방송 출연이나 공개 강연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부각하면서 대북 군사행동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역설해왔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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