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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해상무기<9>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호

최종수정 2013.11.10 23:50기사입력 2013.11.10 23:50


중국은 송나라에서 원나라까지 정크선단을 이용해 해상 실크로드를 장악한 해상 강국이었다. 그러나 명 태조 조원장은 1371년 연해 주민의 출해를 금지했다. 명의 3대 황제인 영락제의 지시로 일곱 차례 진행된 정화의 남해 대 원정도 300여 년간의 해금 정책을 바꾸지 못했다.

이후 청나라를 거치면서 중국은 내륙중심으로 회귀하게 되고, 청이 쇠약해질 무렵에는 해양강국들의 침략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한 동안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2000년대 들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게 된다. 이와 함께 그 동안 등한시 했던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해군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26일 취역한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호는 대양 해군으로 발전 중인 중국 해군의 위상을 말해 준다.

▲50여 년의 꿈= 치열한 국공 내전 과정에서 대륙은 공산화 되었지만 국민당은 타이완에서 결사항전하고 있었다. 결국 건국 선언도 하기 전인 1949년 4월 23일 짱수성 타이저우에서, 공산당군 육군 병력 가운데 일부를 차출하여 오늘날 중국 해군을 창설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 해군 전력은 미비했고, 대만해협을 건너 타이완을 점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치열한 격전 끝에 타이완은 오늘날 중화민국으로 남게 되었고, 대륙만 중국 공산당 손에 넘어가게 된다. 또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공산당 지도자들은 제해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통감하게 된다.

중국의 바닷길이 미 해군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어, 홍콩, 마카오를 통해 전략 물자를 들여와야 했다. 또한 미제7함대의 항공모함은 중국과 타이완과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나타나 중국 고위당국자들을 긴장시켰다. 결국 1950년대 말 결국 마오쩌둥과 중국의 전설적인 국무총리인 주언라이는 중국 해군에 항공모함 건조에 필요한 연구를 지시하게 된다. 연구 결과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중국 1년 국가예산에 버금가는 자금이 필요했고,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많았다.



▲중국 해군의 아버지 류화칭의 등장= 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불어 닥치면서 중국의 전분야가 20년 뒤로 후퇴되었고, 항공모함 건조계획은 요원해져 갔다. 또한 마오쩌둥 집권 당시 중국해군의 전략은 수세적인 연안방어전략에 한정되어 있었다. 항공모함 보유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해군사령관으로 덩샤오핑의 친구인 류화칭이라는 인물이 취임하게 된다. 오늘날 중국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류화칭은 신 중국 이전의 공산당군 출신으로, 1954년에서 1958년까지 4년 동안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 해군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엘리트 장교였다. 1985년 류화칭 해군사령관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까지 겸직하게 되는데, 당시 적극적인 근해방어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중국 근해의 개념을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 필리핀 라인의 바깥으로 넓혀 작전 범위로 삼은 것이다.

▲부활하는 항공모함 건조계획= 1980년 5월 류화칭 해군사령관이 미국 방문 시 미정부의 배려로, 지금은 퇴역한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참관하게 된 것이다. 중국해군의 최고위급 인사가 항공모함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985년 3월 광저우에 위치한 중국의 폐선처리업체가, 호주해군에서 퇴역한 1만 5천 톤급 항모 맬버른을 구입하여 광쩌우로 가지고 온 것이다.

이 항모는 고철로 분해되기까지 5년 동안 광저우에 정박하면서, 중국해군과 조선 기술자들에 의해 면밀하게 조사되었다. 1985년 이후 변화된 해양전략에 맞춰 중국 해군은 건함 계획을 세우는데, 항공모함 건조에 대한 연구도 다시 시작되게 된다. 연구결과 문제는 예산이었다. 당시 항공모함 건조에 필요한 예산은 대략 80억에서 100억 달러 정도로 예상되었는데 당시 중국의 한해 국방예산과 맞먹는 금액이었던 것이다.



▲바랴그에서 랴오닝호로= 결국 항공건조계획은 2000년 이후로 미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중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은 1992년에 구 소련의 붕괴로 건조가 중단된 미완성상태의 쿠츠네쵸프급 항공모함모인 바랴그를 구입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와 접촉을 했고, 키예프 급 항공모함 구입을 위해 러시아와 접촉을 시도했다.

결국 1998년부터 2000년 사이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바랴그를, 러시아에서는 키예프와 민스크를 관광 목적으로 들여오게 된다. 바랴그는 애초 해상 카지노로 쓰기 위해 따롄조선소로 들어 갔지만, 본래 용도와는 다르게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호로 재탄생 한다. 지난 9월 26일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랴오닝호의 성대한 취역식이 열린다. 랴오닝호는 갑판 길이 302m에 폭은 72m, 배수량 6만7천5백 톤으로, 중국이 독자 개발한 전투기 젠-15가 운용될 예정이다.



랴오닝호와 관련되어 흥미로운 점은 중국정부는 작전용이 아닌 과학연구 및 훈련용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이다. 주변국을 의식하는 점도 있지만, 작전용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얘기이기도 한다. 특히 실전적 전투 능력을 갖추기까지는 앞으로 수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아울러 항공모함이 제 역할을 수행하려면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 등을 거느린 전단을 구성해야 하는데, 중국해군이 이 단계까지 나아가려면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랴오닝호와 별도로 중국은 2015년까지 4만8천∼6만4천 톤 급의 핵 추진 항공모함 2척을 자체 건조할 예정이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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