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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갑과 을의 관계

최종수정 2017.08.25 10:16기사입력 2017.08.25 10:16

명법스님
명법스님

[아시아경제]'갑'과 '을'이라는 말을 들은 지도 벌써 몇 년 됐다. 잘 알다시피 계약서를 쓸 때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과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갑과 을에 계약당사자의 이름을 기입하면 실제적 계약관계가 성립하는데, 이 말이 사회적 관계 전체에 적용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 대부분이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갑으로서, 그 상대는 을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정확히 그 정곡을 콕 집어낸 말이 있을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통쾌함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건 그 당시 내 처지가 갑이 아닌 을이었기 때문인데 모르긴 해도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나처럼 이 말에 왠지 모를 해방감과 서글픔을 느꼈을 것이다.

언어가 단지 사태를 바르게 기술하기만 해도 모종의 해방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태를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그 사태를 바꾸려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으므로.

최근 우리사회에서 갑을 관계의 역학을 바꾸려는 실질적인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얼마 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공관병 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장군과 사모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장군과 사모님이 누구인지 바로 이름이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불교계에서는 공관병에게 교회 출석을 강요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분개했다.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사모님'의 변명이었다. 왜 공관병을 노예처럼 부렸냐는 질문에 "아들 같아서"라고 대답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일을 시켰을 리 없을 테지만, "아들 같아서"라는 말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백번을 양보해서 정말 아들이라면 노예처럼 부리고 자기의 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강요해도 괜찮은 걸까?

최근 급증하는 데이트 폭력이나 아동 학대, 가정 폭력을 보면 모두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연인, 부모, 자식 등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한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폭력은 개인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며 반복적으로 오랜 기간 계속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또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아들이 다시 자신의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상처를 입은 여성이 모든 남성에 대하여 적대심을 품거나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지는 등 폭력의 악순환이 일어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역시 그러하다. 자식들이 그들의 뜻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것 역시 폭력이 아닌가. 자식의 인격이나 그들의 내면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 역시 사랑을 빙자한 폭력이 아닌가. 도를 넘는 사랑은 모두 그렇게 폭력이 되기 쉽다.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가기 바라는 것도, 좋은 직장을 얻길 바라는 것도 자식들에게는 폭력과 억압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종교는 가장 깊은 내면성의 형식이다. 그것을 바꾸려는 것은 그 사람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식이든, '자식 같은' 공관병이든 그들의 종교마저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무리 변명해도 폭력이다. 

명법스님 은유와마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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